마태복음 23장의 말씀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가지 화에 대한 선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일곱 가지의 선언은 모두가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화 있을진저라는 말은 너희의 일로 참 많이 슬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시고 탄식하신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외식 때문이었습니다. 외식은 연기자가 배역을 맡아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의 두 가지 예를 들면 하나는 경문을 자신들의 기도생활을 자랑하기 위하여 이것을 크게 만들어가지고 기도 시간 외에도 늘 차고 다녔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옷술입니다. 옷술은 옷단에 매단 것인데 착용한 사람이 이것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람을 의식하고 옷술을 통하여 말씀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자랑했습니다.

본문의 일곱 가지의 화 있을진저라고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외식자들이 천국 문을 가로막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들이 참된 회개와 참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았다는 뜻입니다.

2) 이 사람들이 모두 다 교인 수를 늘리는 데는 열심을 가졌지만 자기들보다 배나 부패한 외식하는 자들로 만들고 지옥 자식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와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일들 그걸 가르치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여기 외식하는 자들은 이런 사명의 일들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고 그 중요한 일들을 이루어나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눈먼 인도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진리에 눈이 먼 소경 된 인도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를 열심히 했지만 더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지를 드러내고 싶어서 여기에 박하, 회향, 근채와 같은 것에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을 지키지 않음을 지적하셨습니다.

5) 마음의 성결이 중요한데 마음의 성결은 무시하고 겉의 성결만을 치중하면서 살았던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마음이란 삶의 인격을 형성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가득한 것이 말로도 행위로도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오직 주님의 성전으로 온전히 지켜가는 일들이 되어야 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성도들 삶에도 유익도 되는 것입니다.

6) 내면적인 성결이 없이 외적 단장만 가지고 있는 모습을 회칠한 무덤과 같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덤 바깥에 석회를 반죽해서 발라놓고 햇빛이 비치면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속은 부패한 시신이 있고 불쾌한 냄새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외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내적으로 완전히 부패해져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거듭남이 없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7) 29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에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돌보는 일에는 애를 썼지만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예수님을 외면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무덤을 돌보면서 가지려고 했던 목적은 자신들이 얼마나 의로운지 자신들이 얼마나 경건한지를 사람들에게 드러내보려고 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 화 있을진저라는 대상이 되고 뱀이여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정도로 예수님께서 판단하셨다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잘 깨달아서 진정한 믿음을 가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외식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으로 말을 하며 행위를 하며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고 모두에게 유익이 되어서 칭찬 듣는 교회와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