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유다의 불신 도시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 선포가 나와 있습니다. 그 도시들은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입니다. 예수께서 이 도시들에서 권능을 가장 많이 보이셨는데 회개를 안 하더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분명히 기쁜 소식입니다. 생명을 가져다주고, 삶을 생명을 찾아갈 수 있는 길들이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런데 이 기쁜 나팔의 소리에 피리의 소리에 춤추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사람들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대의 모습입니다. 이 세 곳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일하셨을까요?

1) 고라신은 갈릴리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특별한 언급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지역에서 역사하신 주님의 행적을 볼 때 이곳도 주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주님의 제자들이 활동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벳세다는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고 산에서 기도하고 나신 후에 바다를 건너가신 일들과 소경을 고치신 것도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3) 가버나움은 갈릴리 서북해안에 있는 큰 성읍입니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이곳인데 예수님께서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씀을 하실 만큼 예수님께서 말씀의 사역들을 감당하였던 곳입니다.

이렇게 권능을 많이 보여주었고 복음의 사역이 많이 펼쳐졌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의 이 사람들은 끝까지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니 너희는 두로와 시돈보다도 못하고. 소돔보다도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이 도시들에게 심판이 선언된 이유

1)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권능을 보고 회개해야 하는데 이 도시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베풀어주시는 목적은 권능을 통하여 하나님을 깨닫고 그 앞에서 자기의 잘못된 모습들을 깨달으면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2)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자, 그 모든 주어지는 복음의 내용들을 순수하게 그저 아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자의 모습을 가진 자에게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마태복음 183절과 4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속뜻은 이들에게 회개하고 돌이켜서 구원을 받으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권능을 보고, 말씀을 듣고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 이 악한 세대의 사람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오라라고 하는 초청의 말씀이 바로 600번 정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초청은 주님만이 하실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주님만이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지금도 회개할 줄 모르고, 죄 짐을 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방황하고 있는 인생들을 향하여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말씀에서 주님이 초청하는 대상은 제한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제한도 없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 오면 소망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십니다. 만족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초청 아래 늘 주님 앞에 달려가 거기에서 소망을 갖고 거기에서 안식을 누리시고 거기에서 참 평안을 누리고 살아가는 참된 성도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 이 세대 악한 세대 속에서도 참 행복자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