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죄악에 빠져 있었던 유다 왕국은 결국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예루살렘 성은 처참하게 무너졌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유다 백성들의 회복과 본토의 귀환을 선포했지만 현실의 모습은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 환상은 유다 백성들이 지금 처해 있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려가서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뼈들이 널브러져 있는 광경을 보여주시면서 이것이 지금 유다 백성들의 상태라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절망 속에 황폐해진 영혼의 모습도, 민족과 가정과 인생의 모습들이 마치 이 마른 뼈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묻습니다. 3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들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에스겔이 믿었던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절망 가운데 소망을 불어 넣으시는 전능자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는

1) 말씀으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을 주셨고 에스겔은 그 뼈들을 향해 대언합니다. ‘그 뼈들이 살아나리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자 사람의 모양이 갖춰지고 그 가운데에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말씀이 떨어지는 곳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일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고,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뜻과 의도와 계획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2) 이러한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역사하여 사람의 모양은 갖춰졌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없습니다. 이 생명 없는 자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던 것은 생기가 들어감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생기는 하나님의 영, 성령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모든 일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져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 땅에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에게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어야 하고, 성령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성령에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소망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복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소망하는 일들, 육신적으로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과 생활이 어떻게 되느냐 보다 우리의 영적인 회복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갖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살고, 성령의 인도함 속에 살아가길 기뻐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들을 다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복된 삶은 여호와의 은혜로 되는 것이고 영적인 모습이 회복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앞으로 나오셔서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없어 보이는 내 삶의 모든 문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 해결될 줄 믿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면서 여러분 마음의 소원하는 일들과 현실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복과 도우심의 역사가 나타나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고 마음속에 품은 간절한 소원까지도 이루어지는 복된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