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의 주요내용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반복된 실패입니다. 사사들은 구원자, 재판관들이었습니다.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보내 구원하시는 일이 반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하나는 회개와 구원입니다. 죄를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여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사사기의 시작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인물을 중심으로 한 한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정복 전쟁을 한 일은 일단락 지어졌지만 아직 이 땅에는 정복하지 못한 땅과 성읍들이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하여 살아야하는데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차지한 땅을 제비뽑아 각 지파에 기업을 분배해줍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기업에 정착은 했지만 아직 정복하지 못하고 완전히 차지하지 못한 일을 감당해야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없이 남은 지파들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물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나머지 정복의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을 정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에 잘 정착한 지파가 있는 반면에 가나안 족속을 포용하고 남겨두는 가운데 오히려 쫓겨나거나 타협하게 된 지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쫒아내지 못하였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전부 쫓아내라고 하셨는데 거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불순종한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공한 지파들도 있었습니다. 그 지파는 유다 지파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유다 지파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라고 했는데 이에 순종했습니다. 가나안보다 먼저 올라가서 정복했습니다. 이는 창세기 49장에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놓으시고, 명령하시고, 허락하신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둘째, 유다 지파는 시므온에게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함께 올라갔습니다. 당시 유다와 시무온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2차 인구 조사를 통해 살펴보면 유다 지파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수(20세 이상)76500명입니다. 전체 지파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반면에 시므온 지파는 22200명이었습니다. 전체 지파 중에서 가장 미약한 지파입니다. 가장 힘이 강한 유다가 가장 힘이 약한 시므온에게 함께 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상호 협력하려는 믿음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셋째, 지도자 갈렙과 옷니엘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했습니다. 정리하면 유다 지파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형제와 상호 협력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많은 것들을 제시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 교회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함께 나아갈 때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다 지파 외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파는 요셉 지파 뿐이고, 나머지 지파들은 오히려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타협하며 사는 실패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타락한 길로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막히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쫓아내고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땅을 차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약속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여호와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사는 백성, 하나님께만 기쁨이 되고 주의 말씀만을 따라 사는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구원 받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고 목적하시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겨진 자들로 인해 이스라엘이 당할 징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다.” “그 신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올무는 짐승들을 잡아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을 없애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아내지 않으므로 타락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옆구리의 가시가 주는 고통을 당해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고 다 말씀하셨는데 도리어 불순종하여 가나안 족속을 포용한 결과는 고통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음행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가 되고 미혹이 되었습니다. 축복의 땅에서 오히려 징벌을 당하게 되는 결과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당시 가나안은 철기 문화로서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이스라엘은 군사력으로는 우위를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복 전쟁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르셔서가 아니라 전쟁이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이기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고 나아가야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충분히 봤습니다.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쫓아내지 않은 모습은 불신앙입니다. 유다 지파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반응했는데 나머지 지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군사력이 아니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믿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믿음 없음은 죄입니다. 그래서 실패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온전한 순종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100% 순종입니다. 99% 순종했더라도 1%의 불순종 때문에 결국은 타협하게 되고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지파들이 잘 한 일이 있고 칭찬받을만한 일을 했더라도 타협했기에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어서도 안 되고 불쌍히 여겨서도 안 되고 그들과 혼인해서도 안 되며 진멸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들은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둘 곳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할 곳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갈 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흘러야 하는 땅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우상을 두겠습니까? 이 땅에 제단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겠습니까? 오염되고 더러운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그래서 100% 순종하여 다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죄악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을 함께 품을 수 없습니다. 죄의 흔적은 완전히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가나안 족속을 사용할 수 있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우리가 자극을 받을 수 있으니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혼인하고, 타협하며 섞여서 살아가며 노동력으로 착취하였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고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들은 사람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언제나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고 형제들과 일치단결하는 가운데 상호 협력하고 쫓아낼 것 쫓아내고 버릴 것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흘러넘치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