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야 한다.         에스겔 37:1-10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의 삶이 항상 편안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 보다 더 혹독하고 어려운 고난을 겪기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에스골 골짜기의 환상은 바로 이와 같은 비참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고난과 비참함이 있는가에 대해 성경은 바로 ‘너희의 죄 때문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고난의 채찍으로 사용하셔서 때리고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죄를 깨닫고 돌아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실천할 때에는 놀라운 복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죄에 물들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채찍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과 역경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히 멸절시키고 쓸어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의 복된 은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절망스런 상태에 빠지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선 선지자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영혼을 삼키고 죽이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제사장들도 역시 영적으로 타락한 가운데 백성들의 타락을 간과하고 재물과 돈에 탐욕스런 행위들을 자행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지도자들은 먹이를 삼키는 이리와 같았다고 말씀합니다. 즉,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 영적 지도자들 까지도 한 결 같이 타락한 가운데 죄악을 자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이들의 상태를 심히 마른 뼈와 같은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뼈가 가득한 곳, 그 곳은 바로 시체의 골짜기입니다. 완전히 썩고, 또 말라 비틀어져서 산처럼 쌓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로 죄에 의해 말라버린 상태, 절망적이고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 그래서 남의 행복을 짓밟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이 바로 이 시체의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이 이런 모습과 구분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빠져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지를 않습니다. 신앙의 무감각증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고, 죄로 인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더러운 것을 만져도 더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상태, 결국 죽음으로 가는 상태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체의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상태로 사는 자들에게 성경은 소생케 되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말씀’입니다(에스겔 37:4-5).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는 ‘생기’입니다(에스겔 37:9-10). 바로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성령입니다. 다른 것으로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되어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고, 받고, 듣고, 내 마음에 심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에 살아나게 됩니다. 변화됩니다. 소성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백성,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자들이 됩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성령)로 충만한 성광의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