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4일 담임목사 설교
예수님이 우십니다. (눅 19:41-44)
오늘 설교의 제목은 “예수님이 우십니다.”입니다. 예수님도 과연 우셨을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고 답답하시고 우셨는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때문에 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신 장면은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첫째는 나사로를 위해서 우셨고, 둘째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을 보면서 우셨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을 위해 우셨습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우신 모습은 단순히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 깊이 슬픔 속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고 울음이었습니다. 큰소리를 내며 우시는 모습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예수님께서 우셨을까요? 여기에는 3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백성들이 평화의 소식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불법과 죄악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었고 증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죄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그들을 덮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나 요동도 없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백성이었습니다. 이런 예루살렘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백성들을 사랑하셨기에 끊임없이 평안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따라서 구원 메시지가 세상에 널리 선포되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교만과 아집을 버리지 못해 자처해서 파멸의 길로 내달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신앙이 날로 성숙되고 성장되어야 하는데 그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죄의 문제에서 떠나야만 살길이 생겨지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평화의 조건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회개해야 살길이 열려지는데 오늘 예루살렘 백성들은 말씀을 붙잡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예루살렘을 보고 속상하고 안타까워서 우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돌아서야 살 수 있습니다.
 둘째, 그들이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권고라 찾아온 때, 방문한 때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구원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셔서 찾아오시는 때, 죄인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될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찾아오시고 방문하신 때가 권고받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밖에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의 문을 닫아 놓으면 우리에겐 진노의 형벌이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우리를 향해서 권고하시는 것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권고하시길 원하시고 말씀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도록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신 이유는 그들은 복음이 선포되었는데도 귀를 막고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들 앞에 닥쳐질 고난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죄악된 모습으로 인해 멸망의 채찍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은 경고가 주어졌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예루살렘의 운명은 비참했습니다. 예수님의 권고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닥쳐질 장차의 일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말고 잘 깨달으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사랑을 마음에 담아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