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14일 담임목사 설교
 전화위복 (로마서 8:28)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의미대로 해석을 해보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아갈 때 모든 것이 합력되어져서 그 백성들에게 선하게 되어질 거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떠한 형편에서든지’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순경도 있을 수 있고, 역경도 있을 수 있으며, 환난과 실패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면 결국엔 유익한 결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전화위복’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세상의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은 종이 되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일이 발생해도 믿음의 사람답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비록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는 하게 되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절대로 놓치 않았습니다. 1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험난하고 억울한 생활을 하였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바로왕의 인정을 받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형편과 처지를 따지지 않고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복종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어 요셉에게 전화위복의 축복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성도의 특권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여호와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이와 같은 자가 성도의 특권으로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지혜도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의 믿음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절대 그들을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성도들의 고난은 무엇일까요?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고난을 만나게 될 때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정신 차림으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탕자는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 탕자에게 실패가 없었으면 그는 방탕한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의미는 ‘고난의 때에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지난날의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회개하고 돌아갈 때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난은 변장한 축복입니다. 변장한 것이 벗겨질 동안엔 쓰리고 아프지만 견뎌 내면 축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운 법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가운데에 함께하시는 여호와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우리의 고난 가운데, 실패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문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붙들게 될 때에 우리의 고난을 벗겨주시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형통과 축복의 길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는 실패를 통해서 더욱 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며, 더 나은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성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믿음의 줄을 놓고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놓고 신실한 신앙인의 길을 벗어나서 낙망하게 되어질 때 입니다. 실패와 고난이라고 하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찾아오는 낙망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성광교회 성도는 낙망이 아니라 소망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붙들어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