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길을 걸으라 (창 21:1-7)
  이 시대에는 두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무엇이든지간에 한쪽으로 편협한쪽으로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7:11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정도로 걸어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9:62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이성과 감정, 혈연, 권력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쳐 정도를 걷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시편 14편에서 하나님은 정도를 걸어가는 자를 찾으시나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다 치우치고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현상을 ‘일그러진 자의 모습’이다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현상은 능력이 인격보다 우선하는 시대입니다. 사람의 됨됨이 인격은 아무 상관없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만을 인정하는 사회입니다. 결코 옳고 바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그러진 모습이 아닌 정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삭의 탄생에 관한 부분인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다운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셨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그의 종 엘리에셀이나 후사를 삼겠다는 투정을 부립니다. 또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이번에는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을 후사를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난 아이가 후사가 될 것이며, 그의 이름은 이삭이라고까지 말씀해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뒤 25년이 지난 후인 아브라함이 100세때에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육신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 아들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인간은 그 약속을 믿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정도를 걷지 않고, 좌우로 치우친 일그러진 모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성도는 어떤 모습과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정도를 걸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나아갈 때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육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성도의 살 길은 언약의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길을 걷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길을 걷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학교교육의 목적은 기술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도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정도를 가기를 소망하는 열정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 길을 갈 때 여러분의 삶과 생각이 정리됩니다.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쳐서 복종하게 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옳은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나 자신의 변화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우리의 변화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언약궤를 빼앗아오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블레셋에는 재앙이 닥쳐 왔습니다. 독종과 질병으로 블레셋 민족이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재앙의 문제를 찾는 중 언약궤에 주목하게 되었고, 만일 젖나는 암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실은 언약궤가 벧세메스로 곧장 향하면 이 모든 문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암소에게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끌게 했을 때 암소들이 울면서 벧세메스로 곧장 갔습니다. 여기서 두 암소가 울면서 갔다는 것은 젖을 먹일 새끼들이 있지만, 맡겨진 일이 있기에 사명이 있기에 이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끼들을 뒤로 한 채 갈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는 자는 주변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주님께 맡기고 정도를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인하였습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확인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멋진 성도의 삶입니다.
  로마서 2:9-10에 악을 행하는 사람의 영에게는 환란과 곤란이 있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겐 영광과 존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악과 선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를 따르느냐 벗어나느냐에 따라 악과 선의 길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선한 길, 정도의 길을 걸어 복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를 붙잡고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