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출애굽기 14:1-2


        전 세계 경제가 미국에 달린 것처럼 침울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소식 속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쓸쓸한 죽음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죽음의 소식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측들을 합니다. 자기가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심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이란 것이 좋기도 하지만,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걱정거리가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걱정거리를 차단해야 하고, 그 걱정이 거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 걱정 끌어안고 죽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럼 이 걱정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걱정은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어 놓으신 문제에 자기가 다시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걱정은 무신론의 한 형태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것을 증거 합니다. 우리는 믿음 속에서 걱정의 문제를 대처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양들은 민감한 동물입니다. 겁이 많아서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서 날뛰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이런 양들처럼 그렇게 작은 일에 놀라는 자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에게는 선한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목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데,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게다가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쫒아오고 있습니다. 양쪽에 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 주님께서 출애굽을 시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망과 좋은 일들만 있을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뜻밖의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좋은 길, 보장된 길’이 아니라, 집어삼킬듯한 험한 바다 앞에 진을 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악조건의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이런 시험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지혜를 주시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보시고, 이 자리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확신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늘 지켜주십니다.

 성경에 하갈을 보십시오. 자신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쫓겨나야 했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형들에게 버림받고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모세도, 다윗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그랬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란을 당하니까, ‘운명인가보다. 팔자인가보다.’ 이러지 말자는 겁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할 뿐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그들을 혼자 두면 안됩니다. 은혜의 자리로 동참하게 해주고, 위로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고통과 환난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어려움과 시련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만 아시는 뜻이 있어.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선하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셔.’라고 하면서 우리 안에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불행’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 선하심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그저 불행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시편 37편에서는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붙드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있던 그 위기의 장소는 절망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는 장소였던 것이었습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믿음 안에서 회복하시고, 찬송하시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