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던 시절, 그의 가족들은 애굽에 있는 고센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때 이동한 야곱의 혈육은 총 7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주 1세대들은 죽고, 그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고, 그 수는 장정만 60, 어린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200만에서 300만까지 예상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의 말씀이고, 축복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떤 사람이고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극하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은 애굽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달가운 일이 되지 못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애굽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 번성한 것을 보고, 그들을 경계하고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혹독한 노동을 시키고 무거운 짐을 지우며 노동력을 착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였고, 이에 대한 탄압의 강도는 더욱 강하여져서 급기야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려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더욱이 이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녀 삼아주신 특별한 민족입니다. 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탄압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중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장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애굽에 다양한 재앙을 내리시며 심판하십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탄압의 시기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혹독한 노동력 착취와 태아의 죽음으로 인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었고,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2:23).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하시며, 그들을 이제 구원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1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며, 고통과 탄식이 가득한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아직까지 죄의 고통과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여 구원의 일에 동참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탄압과 고통 속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선행과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4-25).”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아무 것도 모르고 계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의 음성을 듣고 돌보기 시작하셨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떠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방치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열어주시고 이루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하나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준비하고 계셨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통해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한 순간도 떠나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운 일이 엄습해오더라도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고통을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 은혜 주실 때, 생명주시고 건져주실 때, 그때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계시며,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3:7).”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떠나지 않고 계시며,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고통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내 것이며, 나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구원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우리의 구원 또한 이와 같이 크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 70명이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200만에서 300만 가량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마어마한 숫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힘으로는 애굽의 학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수적 우세함과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새 생명을 전도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생명이 전도되는 이 일은 나의 힘과 지식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신앙 생활하는 사람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와 같이 도우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우리의 인생 전부를 맡기며,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파하여 가정을 구원하고 생명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