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인이 되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바울의 이러한 주장은 큰 오해와 반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온전한 말씀과 교리로 잘 성장되고 믿음이 바르게 심겨진 연장자들은, 아직도 신앙이 어리고 믿음이 약한 후배들이 바른 믿음과 신앙의 법칙에 따라 성장하도록 잘 돌봐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로 인해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시험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으로는 먼저 죄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악용되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생각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생각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없는 자들이 이와 같이 죄를 지어도 된다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거부감을 나타낼 것이고, 기독교에 대해 평가절하할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두고 그럴 수 없느니라!”고 하며 강하게 반박하였습니다.

     또 거짓 교사들은 죄를 많이 지으면 은혜를 체험하고 깨닫는 일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죄에 대한 관용적인 자세를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쉽게 죄를 짓고 죄의 노예가 되도록 하려는 사탄의 사고방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죄에 대해서 완전히 죽은 자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신실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멘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혹자들은 율법으로의 회귀를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죄를 합리화할 수도 없고, 율법주의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그러한 바울의 반박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성도의 삶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첫째는 성찬에 대한 내용이고, 두 번째는 세례 의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물속으로 들어감으로 인해 옛 사람이 죽고, 물속에서 올라옴으로 인해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신앙고백의 행위입니다. 이런 의미 때문에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중생의 씻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중생에 의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새 사람이 되었고, 그로 인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관계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통해 다시 산 자라고 하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산 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세례의식을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부활에 동참한 자는 더 이상 죄에 거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성화의 삶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칼빈이 작성한 기독교강요에 보면, 하나님이 자비하심으로 그리스도를 주셨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로 인해 새 생명을 주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새 생명을 소유한 자들은 주님이 주인 되시는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인 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그 주님과 함께 은총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은총은 이중은총이라고 합니다. 이 이중은총 중 하나는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서 성화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 흠 없고 순결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성화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은혜인 동시에 의무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성도들을 주장하고 다스리는 존재가 바뀌었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의 삶은 열매 맺는 성화의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화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고, 은총받은 자로서의 새로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의 삶입니다.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은 성도는 죄를 범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와는 완전히 결별되고 죄를 짓게 하는 사탄으로부터 분리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종의 제도를 통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당시 종들은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었고, 그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신분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죄에게 종노릇했던 옛 사람이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하는 것은 그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해방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성도들의 삶과 죄악된 세상 사이에 울타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가 우리를 침범하거나 주장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다는 의미입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삶이란, 예수 안에서 다시 산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사망의 사슬에서 영원히 벗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 마땅합니다(11). 그리고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서, 새로운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열매를 맺는 성화의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연약한 나로 인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에 이끌려 사는 것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성화의 삶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해방된 자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끊임없는 죄와 사망의 위험이 엄습해 오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지키실 것이기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 가운데 믿음으로 인한 담대함을 소유하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끝없이 성화의 삶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열매를 맺는 자로 살아가시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