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에 방문하고자 했던 바울은 디도의 보고를 통해 방문 계획을 연기하였습니다. 디도의 보고에 의하면, 고린도교회에는 바울이 천거서 없이 스스로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바울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비방하고 모함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교회의 평안과 안정을 위해서 사역의 동기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해 왔음을 밝히면서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이 일을 감당했고, 양심으로 이 일에 대해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만날 것을 이야기하고, 오늘 본문에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이 열정적으로 복음을 증거한 이유와 동기와 원동력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자신의 사역에 대해 설명하고 증거하는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도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바울과 같이 열정 있는 믿음의 모습으로 생명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이유와 원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먼저 주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의 두려우심을 안다고 고백합니다(11). 이것은 바울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주의 공의로움과 엄위하심을 알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으로 경건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가진 복음에 대해 열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 두려움은 주님께서 오실 때,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들에 대해 드러나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인식하면서 발생되는 두려움입니다(10). 자신이 선악 간에 행한 모든 것들이 심판대 앞에서 밝히 드러난다는 것을 아는 자들의 삶의 자세는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9). 이 모습이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고 심판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주를 기쁘시게 할 것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지고 맡겨진 복음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선악 간의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심판대는 구원과 멸망에 대한 결판 장소가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행한 일에 따라서 받게 될 상급이 결정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선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순종한 것을 의미하며, 불순종한 것은 악에 해당됩니다. 이것에 대해 판결 받고, 상급이 결정되는 장소가 심판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이 구원받는 것과는 무관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상급을 받는 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은 심판대 앞에서 받게 될 상급을 바라보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을 행하며 열정을 다해 살았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심판대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신보좌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불신자는 이 신보좌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 대해 염소라고 비유하셨고, 왼쪽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양이라고 비유하셨고, 오른쪽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양 되어진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25:34). 그러나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41). 이 말씀을 통해서, 잃은 양을 찾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본 바울은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되었고, 열정적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심판대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이 받게 될 영광과 더불어 불신자들이 받게 될 저주에 대해서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받게 될 상급과 면류관을 인식하고 기억하며, 바울처럼 주를 위해 헌신하며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던 원동력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잘못된 교훈을 가진 자들이 고린도교회에 침투하여 바울을 비방하고 모함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 열정적인 바울의 모습이 이들의 눈에는 미치광이의 모습이었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주장하는 바울의 구원론이 잘못된 복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모습이 약해지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있는 이 때, 성도들은 바울처럼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13).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14).” 여기서 강권한다는 것은 붙들고 제어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붙들었고, 꼼짝 못하도록 제어하고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이끌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강권하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미친 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복음은 이와 같이 복음을 핍박하는 자를 변화시켜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미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공급받은 우리들은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을 만나고 복음을 간직하게 된 바울은 불가항력적으로 자신을 이끄신 하나님의 은혜를 영광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 만났을 때의 기쁨, 구원받았을 때의 감격,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은 이 기쁨과 감격의 회복은 우리의 삶에도 나타나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도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나타나며, 부르신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헌신이 실천될 때, 그것이 바로 바울이 고백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이며(17),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결단의 삶인 것입니다.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죄가 아니라 구원에 속하고, 육신이 아니라 영에 거하며, 하늘에서 받게 될 상급과 면류관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열정과 헌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며 영광 돌리는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