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은 레위기 3장에는 화목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화목제는 원어적으로 짐승을 잡아 희생을 드리면서 친교를 가지고 화평을 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의 대상인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과 친교와 화평을 누리는 것이 바로 화목제의 목적입니다. 이 화목제는 성격을 따라서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는 감사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축복과 은혜가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서원제입니다. 이것은 서원한 간구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원제 또는 낙헌제인데, 이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러한 화목제의 특징은 희생 제물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서 암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화목하고자 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제물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화목제는 원하는 때에 드릴 수 있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서 제물을 택할 수 있습니다. 또 화목제를 드리고 남은 고기는 화목제물을 드린 사람이 먹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려졌지만, 남은 고기를 나눔으로 인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이웃들과 함께 화평할 수 있었던 것이 화목제의 특징입니다. 이것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이 하나님과 화평하면 사람들과도 화평하게 됩니다. 오늘 이 화목제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화목제의 삶을 배우시고,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깨달음으로 인해서 우리 모두의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되어지고, 하나님의 신령하신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건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은 제물을 드리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인 우리의 모습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흠 없는 자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뿐만 아니라 나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자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시간에 쫓겨서 예배에 참여하지 말고,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예배를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모습들이 바로 경건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지극히 높여드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입맞춤한다, 절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절하기 위해서는 바닥에 엎드리고 그분의 발등에 입맞춤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예배드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형식적인 예배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이사야 1:12-14).”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는 진실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흠 없는 모습으로 드려지기 위해 예배드리는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묵상하고 큰 감사와 감동으로 예배드리고, 예배가 진행되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찬송하고 경배드릴 때, 예배 가운데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충만하게 받고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에게는 예물이 필요한데, 이 예물은 희생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제물의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2). 피가 뿌려져야 그 제물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이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의미합니다. 이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소멸되었고,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는다는 것은 예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할 때 자신의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듯이, 예배드리는 모든 자들은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상시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예배드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또 예배드리는 자의 모습에 대해서 성경에는 예물의 머리에 안수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2). 이것은 희생제물이 될 예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물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죽음은 죄인인 내가 하나님 앞에 죽는 것이며,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바로 예배자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고 하는 자가 예배 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딴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배를 받으십니다. 제물이 희생된 것처럼 하나님 앞에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충성과 헌신만을 고백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바울은 자신을 위하던 삶은 이제 죽었다고 하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위한 삶만 남았다고 고백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삶도 이와 같이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중심이 된 삶이 고백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헌신은 우리의 짧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일부를 떼어 헌금으로 드린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헌신은 우리들 자신을 드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한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예배인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대로 성도된 우리들이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을 살아가셔서, 심령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우리로 하여금 소망 속에 살아가도록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