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 서신서는 위기관리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성경인데, 베드로전서는 외적인 박해로 인한 위기와 그 대처방법에 대해서, 베드로후서는 이단으로 인한 교회 내적인 박해로 인한 위기와 그 대처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것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잘 지켜서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교회 공동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단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개개인에게 주시는 경계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교회가 가진 큰 문제들 중에 하나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함께 있던 자들은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 믿음은 점점 흔들렸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거짓 선생들과 이단들이 일어나 성도들을 미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4).”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교만이며 무지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렸고 미혹되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마치 노아 시대의 사람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가르침과 같이, 약속된 심판에 대해 둔감해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는데도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단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탁월하거나 능력이 있어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성도들이 진리에 대한 확신과 굳건한 믿음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들, 사단의 무리들과 더불어 불신자도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불신자들은 주님의 심판의 때를 대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심판과 재림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그때를 대비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믿음을 강조하며, 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8). 시편에서도 유사한 말씀이 있는데,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시편 90:4). 이 말씀은 주님과 인간의 시간관념은 같을 수가 없으며 차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는 어제, 오늘, 내일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하나에 불과한 개념입니다. 인생의 날수와 주님의 재림을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개념으로 이해할 때, 전혀 조급해하거나 더디다고 생각하며 불안해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베드로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9). 주님의 시간관념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주님의 날이 더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히브리서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브리서 10:37).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2:20). 우리는 이것을 주님의 시간관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지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주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베드로는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설명합니다(9).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시켜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디모데전서 2:4). 이것이 바로 구원받을 자들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의 부르심입니다.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에스겔 18:23).” 생명 구원을 위해 참고 기다리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들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음을 기억하는 동시에 성경이 말하는 재림의 징후를 깨달으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이사야 13:9-10). 마태복음에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복음 24:29-30). 오늘 말씀에는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0).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계에 큰 변동이 일어날 것이며, 창조물에게 부여된 질서가 다 해체될 것임을 의미하는 말씀들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실 날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성도들은 이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으며 준비해야 하는데, 베드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11-12). 여기서 거룩한 행실은 원어로는 일어나서 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한 행실이 반복적으로 실천되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 경건함은 신실하게 예배가 드려져야 하며,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과 심판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도록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