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론을 주제로 쓰여진 성경입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교회론을 중심으로 해서 교리적인 교훈이 제시되어 있고, 4장부터는 그 교훈을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기륵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부여받은 공동체로서, 건물적인 개념에 한정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신앙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그리스도께 생명력을 부여받았고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 각자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부여받은 자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가 힘쓰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 되는 일을 위해서 각자 각자가 최선을 다하고, 이 일들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1), 이 말은 성도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됩니다(야고보서 4:17).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앞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배웠다면, 그것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실천에 옮겨야 할 목록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됨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가 되기 위해서 각자가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실천되어야 합니다(2). 겸손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는 자기 인식과 자기를 낮추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며, 온유는 겸손한 자기 인식이 기반이 되어 하나님께는 순종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2). 성도들은 각자 각자가 오래 참는 일에 힘써야 하고 서로 용납하는 일도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겸손과 온유의 의미 속에는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오래 참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납하라는 말은 포용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사랑으로 포용하고 덕을 실천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죄 가운데 구원받았고, 생명과 구원을 얻은 존재들인데 싸우고 나누어져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그만 감정과 포용력을 상실함으로 인해서 일치가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고 같은 믿음으로 신앙의 공동체가 된 교회가 분열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겸손과 온유를 실천하며 오래 참는 일에 힘쓰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기를 노력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3). 평안은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이런 평안을 통해 성도들이 서로 하나 되는 일에 힘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므로, 성도들은 은혜 받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미움과 다툼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인하여 기쁨이 발생하면 온유와 겸손, 그리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은혜받기 위해 힘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은혜 받는 일을 위해서 노력하시고, 그래서 온유와 겸손과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함이 실천되어짐으로 인하여 교회가 하나 되는 일에 동역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두 번째 일은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봉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주는 것은 그 직분에 맞게 봉사하고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향한 같은 믿음을 가지고 모인 곳이기 때문에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가운데 서로 돕고 협력할 때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7). 성도들은 받은 은혜를 가지고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또 교회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일치되고 그 일치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의 축복을 공급받으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의 의도이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일들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세기에 긴 암흑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로 종교개혁이 일어나 잃어버렸던 이신칭의의 구원관이 회복되고, 개신교가 탄생하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7세기에는 복음주의 교회관이 정립되면서 복음주의 교회들이 세워지고, 18세기에는 경건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이때 생겨난 교회들의 모습이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는 경건을 위한 노력들이 실천되었는데, 성경대로 살아가려는 노력과 거룩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했습니다. 19세기에는 위대한 선교시대가 열려지면서 교회의 사명과 존재의 목적을 성취하게 되고, 20세기에는 전세계적으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면서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이 부어지고, 이로 인해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21세기에 하나님께서는 세워진 교회를 통해 성도들 각자 각자에게 직분을 주시고, 이를 통해 선지자적이며 사도적인 교회가 일어나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12).

    주일날 아무 봉사도 하지 않고 말씀만 듣고 가는 사람들을 영적 소비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소비만 할 뿐, 생산을 하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일하고 생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면 성장되어야 하고, 성장한 가운데 말씀의 역사를 일으키며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봉사와 헌신을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시고, 예수님의 재림의 역사를 성취하시길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부으십니다. 주신 능력을 발견케 하시고, 성령을 통해 그 능력을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공급받은 성도들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이러한 위대한 도구로 쓰임 받아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귀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성광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