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말라기서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이름은 나의 사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말라기는 구약 최후의 선지자이며, 유다 총독 느헤미야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이때는 1차 포로 귀환 이후 시간이 많이 경과된 때로서,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성전 재건이 끝난 후였습니다. 이어서 율법학자 에스라의 인솔 하에 2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으며, 모세 율법에 대한 말씀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포로의 신분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말씀을 배우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은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으며 감사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영적으로 아주 무기력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타락을 일삼았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찾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포로 귀환 후, 황폐한 땅에서의 생활은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성전 짓는 일에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을 완공했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하나님의 축복은 현실적으로 보이거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좌절하고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무감각으로 이어졌고, 형식적이고 거짓된 신앙생활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포로 신분에서 돌아온 것 자체가 은혜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로 돌아온 것이 축복인데, 이들은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불평하며 원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을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성전에 대한 무관심과 형식적인 예배, 그리고 순결해야 할 제사에 대한 업신여김이 화를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으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것이 당시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학사 에스라를 통해서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 이미 배우고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십일조와 더불어 제사와 헌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인색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흠 없는 제물을 바쳐야 하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말씀대로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늘 자신을 살피고 점검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타락하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 중심적으로 제물을 준비하고 자기 편의에 맞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거짓되고 제대로 되지 못한 신앙생활만이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삶으로는 전혀 신앙인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시대는 이와 같이 자기 욕심과 자기 생각대로 하며 살았던 부패의 시대이며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자신들이 지은 죄의 심각성을 느끼거나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 이것은 당시 백성들이 그만큼 크고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고치고 수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아파야 합니다. 아파야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변질과 타락으로 죽을 병에 걸린 백성들, 그들이 낫고 병에서 고침 받기 위해서 그들은 아파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저주를 감내해야 합니다. 범죄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2:3).” 제물을 잡으면 거기서 배설물을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은 태워서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정한 것을 얼굴에 바르고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고 하시며(2:12),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2). 또한 하나님께서는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며(4:1), 그날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4:5). 이 날은 스바냐서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과 같은 의미로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계시록에는 이와 같이 심판의 대상자들을 위해 영원히 불타 오르는 불못이 예비되어 있고, 그곳에는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모든 백성들이 던져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의 대상자들은 교만한 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엄위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쉽고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심판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심판은 마치 불로 인해 지푸라기가 살라지고, 뿌리와 가지가 남지 않듯이 완벽하고 철저하신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이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호와의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있기 전에 백성들이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돌아오고 모일지어다.” 이것이 바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4:5)과 그 말씀대로 온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친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하실 예수님께서 오기 전에 돌이키고 회개하면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 역시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켜서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될 때, 심판을 면하고 송아지처럼 기뻐 뛰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백성들을 향한 사랑의 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라고 말씀하십니다(4: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고, 세상에서 겪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시는 광선을 비추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엄위한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