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는 당시 유대 최고 종교법정인 산헤드린공회의 회원이었으며, 열심 있는 신앙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기에 바리새인들은 형식과 외식에 치중하는 자들이지만 당시 유대사회에서 바리새인들은 아주 경건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그와 같은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성경에 정통한 율법학자이고 유대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관원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가 성전을 정화시키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그분을 만나고픈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신분을 가지고 당시 유대사회에서 거의 이단시되고 산헤드린공회에서 죄인으로 정죄한 예수님을 찾아간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선생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랍비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니고데모의 존경심을 담은 표현이었습니다. 그런 표현을 담아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합니다(2).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선지자와 같은 존재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고백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인정하고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신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비록 니고데모는 율법에 능한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거듭나지 못한 자에 불과했습니다.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태어났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땅의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것처럼,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하나님과 그 뜻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이들은 지식이 없고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고 감정과 의지도 하나님을 향할 수 없지만, 사단의 이끌림으로 인해 죄악된 일들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우리들은 거듭난 자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이것이 성도된 자로서의 본분이며 의무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기에 거듭나지 못한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결말은 죽음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누가복음 16장에는 이 땅에서 고운 옷을 입고 부유하게 살다가 지옥에 간 부자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부자는 불 못 가운데 떨어져 고통스러워하면서 아직까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형제들에 대해서 호소합니다. 거듭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3).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듭나고 구원받는 것이고,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한쪽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빼는 일이 있더라도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9:43,45,47). 첫 사람 아담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세상적으로는 존경도 받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남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4). 무지한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5). 여기서 물이라고 하는 것은 죄 씻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회개하고 죄 씻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의 외적인 징표가 바로 물세례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 온전하게 고백하게 될 때 물세례를 주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속죄의 피로 더러운 모든 죄가 씻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의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물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물과 함께 말씀하신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시는데, 이것은 내적 세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성령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갖게 된 원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8).” 성령은 헬라어로 바람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볼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볼 수 있도록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된 삶의 모습들, 즉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데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인 변화가 아니라 심령과 삶을 포함한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서 합리화하지 말고 믿는 자로서 주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거듭난 자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