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사람이 기름진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었던 그는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그 무화과나무를 지켜보면서 하루 속히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며 해마다 포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록 그 무화과나무에서는 아무런 열매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실망과 탄식에 빠집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맡고 있던 포도원지기에게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자신이 1년만 더 거름을 주며 돌보겠다고 주인에게 애타는 마음으로 간청합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말씀은 여기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었는지에 대한 어떠한 기록이나 결과도 없이 일단락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진행 중이며,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또 한번의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열매 있는 성도의 모습으로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점검하며 회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무화과나무를 관리하는 포도원지기는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의미하고,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이 교회에 심겨지게 되었고, 그 성도들은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교회에서 잘 자라나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원래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아무 쓸모도 없는 들포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통하여 우리가 사망에서 구원함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가꾸시는 포도원, 즉 교회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가 열매를 맺음으로 인해서 기쁨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유일한 소망이 바로 열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행실의 열매입니다. 포도원에 심겨진 우리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 우리는 부끄러운 열매를 맺는 존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열려지지 않은 열매가 부끄러운 열매입니다. 즉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구원 받지도 못한 모습들이 바로 부끄러운 열매를 맺는 모습입니다(1:29-31). 하나님의 영광은 없고 죄의 세상에서 맺혀진 모든 것이 바로 부끄러운 죄의 열매들입니다. 좋은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인 성도들은 부끄러운 죄의 열매가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열매를 맺는지, 아니면 합당한 열매를 맺는지에 따라서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합당한 열매란,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모습을 입은 자로서 맺게 되는 선한 열매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면 이렇게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 안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 그 두 번째는 성령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감동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러한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5:22-23). 이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열매를 맺는 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이런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도된 우리들은 성령에 매여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에 매여 있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육체의 염려와 욕심과 즐거움을 다 끊어버리고 성령에 매인 성도가 되셔서, 성령이 이끄시는 말씀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누가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산상수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한 회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 새 사람이 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는 말씀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30, 60,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땅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사모하고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으로 잘 양육되어질 때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주는 경고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찍어버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에서 밖으로 버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포도원지기는 금년 한해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는데, 이것은 성령의 탄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간곡한 호소 덕분입니다. 이것이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간곡한 호소하심으로 기회가 주어졌음을 깨닫고 열매 맺기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실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전도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