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수리아어로는 게바라고도 불렀으며 본명은 시몬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어서 열두 제자 중에 첫째가 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성격과 다혈질적인 모습과 함께 조급하고 흥분하며 충동적인 모습도 보였고, 확고한 결심과 더불어 순간적인 주저함도 있어서 실패하는 모습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이며 메시아로 고백하여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었던 일, 변화산에 올라가서 장막을 짓고 살자고 했던 일, 바다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걸어가다가 풍랑을 보고 바다에 빠진 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언하시는 예수님께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가 책망 받았던 일, 제자들 중 선두에 서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결국 주님을 부인했던 일 등 베드로와 관련된 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그는 단점이 많았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변화된 이후에는 그가 가진 열정을 주께서 맡기신 일들을 위해 사용하고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베드로가 이방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능력과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의 민족들까지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지역 중 베드로가 처음 사역했던 이방 지역은 룻다라고 하는 곳이었습니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40km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리아에서 팔레스틴 중부지역을 통과해서 애굽까지 가는 도로가 이 룻다를 통과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8년 동안 중풍병에 걸려서 누워있는 사람 애니아를 만나게 됩니다. 시기상으로 볼 때 애니아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셨을 때 중풍병에 걸렸다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그분으로 말미암은 회복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 그는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룻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생명을 구원하고 예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단순히 일어나는 기적과 표적과 나타나는 능력만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룻다에 가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능력을 나타내게 하신 것은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자들이 예수를 알게 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 베드로는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치면서 요란한 행위나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애니아의 병을 낫게 하시는 분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사역하고 있는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 맞추어져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병을 낫게 하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라고 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자신은 주님의 능력을 대행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이 사역을 통해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통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35).

     베드로는 이전에도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고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역시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일어나 걸으라고 말했고(3:6), 앉은뱅이는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능력의 근원이며 회복의 주체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기적과 능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을 통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뭇 영혼들을 구원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적에 있지 않고 영혼과 생명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 결과로 각종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베드로는 자신이 먹고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어부 출신이었고 성격적으로도 단점이 많아서 책망을 듣기 일쑤였던 자였지만, 그런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시자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아는 믿음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증거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후 욥바에 있는 사람들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바에서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많이 하던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가 죽었습니다. 다른 여제자들은 베드로가 다비다의 죽음에 대해 함께 애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불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왔을 때 다비다는 이미 죽었고 장례 절차까지도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도착한 베드로는 다비다의 시체가 누워있는 방에서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하자, 다비다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베드로의 능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믿고 의지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회복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42). 이것을 통해 베드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기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사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연약하고 단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우리 역시 볼품없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고 성령에 붙들리면 베드로와 같이 쓰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임하시는 능력을 공급받고, 비록 기적과 능력을 행하지 못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역사를 이루어가는 데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