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시절,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는 제자들의 수는 날마다 증가하였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가운데 교회 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때에는 과부와 없는 자들을 위해서 매일 식사를 제공하며 구제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의 주축이 되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 일에 소극적이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열두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판단하며(2),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지시합니다(3-4). 이게 바로 오늘날 집사직의 기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도들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집사로 세우기로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하는 것은 믿음과 지혜와 재능이 있어서 봉사할 만한 것을 의미하며, 칭찬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자,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5-6). 스데반은 이 중 한 사람으로, 비록 그의 삶은 사람들에 의해 비참하게 끝났지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그의 삶을 통해 분명히 본받고 깨달아야 할 요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복음주의적인 성도의 삶이고, 성도가 따르고 실천해야 할 개혁주의 영성과 관련된 일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모범적인 신앙인 스데반의 특징적인 부분을 살펴보면서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복음적인 삶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성도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하는데(8:9),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은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에 합당한 성도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고집과 자기 뜻대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스데반은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이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신령한 영적 지혜를 의미하며 성령이 충만한 결과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지혜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깨닫게 되고 그 뜻대로 순종하고 적용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살 때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으로는 성도로 살아갈 수 없고, 오직 하늘의 신령한 지혜로만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러한 지혜로 충만하여서 각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변론을 했는데, 그 누구도 스데반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혜도 주시고 말할 것도 주십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심령을 쪼개는 능력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스데반은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들은 복음에 합당한 모습과 더불어 성숙된 인격과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과 신앙의 모습은 말이나 행동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숙된 인격과 신앙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들은 선하고 착한 열매의 삶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이웃의 칭찬도 함께 받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인데, 스데반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신령한 영적 은혜로,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스데반은 이 은혜로 인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집사가 되었고,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되고 직분 맡은 자가 된 우리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고 헌신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를 통해 사도뿐만 아니라 평신도였던 스데반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 즉 기사와 표적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스데반은 기쁨과 용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용서는 다른 말로 사랑을 의미합니다. 복음에 대해서 스데반과 변론하던 자들은 스데반을 당해내지 못하자, 편법과 불법으로 사람들을 매수하고 스데반을 신성모독죄로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스데반의 표정이었습니다. 비록 스데반은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심문을 받게 되었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보고합니다(15). 또 억울하게 순교하게 되는 그 순간에도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7:60). 천사와도 같았던 스데반의 모습이 진실이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이었으며, 은혜와 권능, 기쁨과 용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충만함 가운데 스데반은 거짓된 고소를 반박하는 설교를 합니다(7). 그러나 이 설교에서 자기를 변호하거나 변명하는 부분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 성전이시고 메시아라고 하는 것을 선포하고, 잘못된 신앙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질책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심령의 찔림을 받은 자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게 됩니다. 비록 스데반은 순교하고 말았지만 마지막까지 복음대로 살았고 참된 성도이며 최후 승리자로 살았습니다.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 역시 스데반과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복음만을 품고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스데반과 성령과 지혜와 은혜와 권능과 기쁨과 용서가 충만함으로 무장되어서, 수많은 방해와 유혹과 대적들의 세력 앞에서도 끝까지 면류관을 바라보고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