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호수, 디베랴 바다와 같은 장소로, 예수님의 초기 사역의 중심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하늘의 복음을 증거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생명과 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생명과 복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신 이유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금년 한해도 풍성한 말씀을 주실 것인데, 여러분들 모두가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사모하여 듣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 교회 표어는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소서!”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말씀과 성령이 아니고서는 성도로 살아갈 수 없고 믿음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자들로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말씀과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올 한해, 이러한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넘치는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며 고기를 잡았지만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아침이 된 지금은 그물을 씻으며 일을 마무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셔서 그들의 배에 오르시더니 몰려든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신 후에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친 상태였습니다. 아마 배를 띄우라는 예수님의 요구와 깊은 데로 가서 다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를 더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부로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수긍하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선생님이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종교적인 가르침을 베푸는 존재인 랍비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분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다시 그물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일반적인 개념의 선생님이 아니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분으로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어떤 존재, 어떤 분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수긍할 수 없는 것을 지시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 앞에 복종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따르기 위해서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며 그 앞에 굴복되는 겸손함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중심 맞추어진 삶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중심이 되어야 주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상식에 벗어난 것이 요청되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권위에 복종하여 오직 주님이 중심되시는 모습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권위에 굴복하여 순종한 베드로의 믿음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낚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6).” 이런 상황은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기 잡는 자들에게 만선의 기쁨보다 큰 기쁨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 밤새도록 원하고 소망했던 만선의 기쁨, 기적과 같은 그 기쁨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기쁨과 기적의 삶도 이와 같이 주어집니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따르게 될 때, 베드로가 경험했던 기적과도 같은 큰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을 경험한 베드로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8).” 힘들어 지쳐있는 베드로에게 낯선 분이 나타나셔서 무리한 요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서 절대적 권위를 직감한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로 인해 엄청난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적 능력을 보고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불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타락함과 죄인 됨을 시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주님 앞에 섰을 때 떳떳한 모습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사야도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스랍들을 보고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깨닫게 되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예수님께 절대적 권위를 직감하고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힌 고기들을 보고 예수님을 신적 능력을 가지신 주님으로 인정하였고, 그 주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주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주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이 기쁨이며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 여기서 취한다는 말의 원래 의미는 사로잡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신적 능력을 목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예수님께 복종하게 될 때 사람까지도 취하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취하는 것이 고기를 낚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들은 모든 것이 성취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올 한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 따라가는 삶을 통해서 주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