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안에서 평안이 깨어지는 이유는 진리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내세우고 주장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평안이 깨지게 됩니다. 교회는 진리를 온전히 사수해야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이해하고 용납하며 평안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성경의 가르침을 잘 받고, 성경의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광교회 모든 성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받는 것에 더 힘을 내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헌신하여서 평안을 이루어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 제국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황제를 신봉하지 않는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추방된 이들은 수년 동안 이방 지역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이 이방 지역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먹는 문제와 안식일에 대한 문제가 율법적 교훈과 부딪히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방 지역에서 먹는 고기는 대부분 우상 숭배의 제물로 사용된 것인데, 다른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제물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적 교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규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육식을 금하고 채식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추방했던 황제가 죽고, 그들이 로마로 다시 들어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자로 나뉘어져서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였습니다.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구원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의식과 규범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구원을 위해 자신들이 지켜왔던 의식과 규범을 내세우며 육식을 완전히 배제했고, 육식을 하는 자들은 잘못되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반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들은 감사함으로 받고 누리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이 강한 자라고 할 수 있고, 바울이 가진 신앙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에 근거한 신앙, 즉 반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구원 얻는 믿음이 있더라도,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향한 배려와 사랑의 권면이 있어야 함을 지적하였습니다.

     실제로 로마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과 반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 대립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에 대해 바울은 두 가지 교훈을 제시합니다. 그 교훈 중 하나는 서로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이 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판단하는 모든 것이 다 정죄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함으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또 두 번째로 바울은 상대의 신앙 상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교회 일에 봉사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적인 신앙과 반율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대립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와 가정에서 화평을 이루는 것에 기준이 되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4).” 이것은 신분이 하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하인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권한은 주인에게만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소유 삼으신 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입니다. 비록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셨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들까지도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을 누구라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이 있다면 그를 세우시고 자녀 삼아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교회가 평안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추구하고 목적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과 자기의 생각을 앞세워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8). 그런 우리가 자신의 신앙 스타일과 경향을 절대화시켜서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절대화된 그것들이 우상으로 둔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길 수 있다(5)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율법적인 교훈에 매여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방인 가운데 개종해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른 날과 같이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는 말로 해답을 제시합니다(5). 이것은 곧 마음이 확신하는 대로 움직이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대로 처신하라는 말씀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6).” 신앙생활하는 모습들은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두 주를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를 위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이로 인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8).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이러한 모습을 통해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과 용납함을 실천하시고, 그러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높여드리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