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하는 대답은 어렵지 않게 내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또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닙니다. 마음에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확신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대답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는 라고 하는 대답의 의미로 아멘을 고백합니다. 아멘은 성도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발견한 후에 고백하는 것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다고 인정하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며, 진정한 믿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라고 하는 아멘 신앙으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두로와 시돈 지방은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위치한 베니게의 항구 도시로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번영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시는 영적 타락의 모습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땅 가운데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셨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며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지역에서 큰 믿음을 보셨습니다. 자기 딸이 귀신 들려서 죽게 된 한 여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이 여인은 헬라인이며 수로보니게 족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7:26).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소리를 지르며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처음부터 호의적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딸이 귀신 들렸다고 말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24). 또 이어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습니다(15:26). 그러나 여인은 이런 수모까지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여인은 이렇게 호소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여인의 이 말 중에서 우리는 특별히 주여 옳소이다마는이 구절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인의 모든 상황을 바꾸고 돌이켜서 자신이 그토록 매달리고 간구하던 일에 대해 응답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옳다고 시인하며 인정한 여인처럼, 여러분들 역시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순종하는 자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로부터 마음으로나 인격적으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동정어린 시선이 아니라, 조롱하는 말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 대해서 반격하거나 악한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였고, 그러면서도 간절하게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와 절까지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 굴복하고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장로였고 대제사장이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부정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까지 했던 모습과 전혀 대조적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할 자들에게는 믿음이 보이지 않고, 믿음을 찾아보기 힘든 이방인에게는 이와 같이 간절한 믿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결국 참 믿음은 아멘 하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확신뿐만 아니라 순종의 모습이 뒤따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인에게 이러한 아멘 하는 믿음의 모습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녀에게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아닌 다른 세상적인 방법과 사람들에 연연합니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그 어떠한 대안도 만족을 주지 못했고, 예수님만이 최후에 카드였습니다.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대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고 있는 것들은 아무런 도움과 해결을 제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에 집착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여인에게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대안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 여인은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확신은 바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메시아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15:22). 이 고백에서 주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의 공식 칭호입니다. 여인에게는 예수님이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더러운 우상이 난무한 이방 땅에 살고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놓치지 않고 마음에 품어서, 그분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메시아라고 하는 믿음의 자리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여인은 자신이 가진 문제가 다른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15:22).” 여인은 딸에게 일어난 문제는 사탄과 관련된 문제이고, 그 문제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로 말미암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여인에게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믿음을 근거로 여인은 예수님께 아멘 하며 순종합니다. 그럴 때 기쁨의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인정되고 그것을 믿음으로 선포할 때 기적이 선물될 수 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주님으로부터 말미암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붙들고 의지하고 아멘하는 순종의 삶으로 이어져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