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마스 전투(삼상 14)에서 이스라엘에게 대패한 블레셋은 보복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의 통치력이 약화되었을 때 이스라엘을 재차 침공하였습니다. 물론 그때 블레셋은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의 변방 골짜기에 진을 치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골리앗이라고 하는 맹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승리로 방심하고 있다가 골리앗을 보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두려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하나님을 모욕하는 그들에 대한 강한 반발심으로 전투를 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는 이러한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빠져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위시한 블레셋에 맞서지도 못하고 대치만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느낀 두려움은 골리앗과 그의 세력에 눌려 있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 다윗이 전쟁터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이새가 다윗을 보내서 전쟁에 참여한 세 아들의 안부를 알아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들을 문안하는 다윗에게 골리앗이 전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삼상 17:8-10).”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대표로 나와서 싸움을 돋우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빠지도록 했습니다. 전쟁터에 들어온 다윗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골리앗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도망하는 군사들을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살아야 할 분이며 믿고 의지해야 할 분입니다. 다윗에게 그랬습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들판에서 죽인 사자와 곰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7).” 다윗의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와 곰의 공격으로부터 건져내주셨는데, 이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는 뜻으로,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한결 같은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골리앗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다윗과 백성들의 모습 중,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우리가 소망해야 할 모습인지는 분명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의 모습은 골리앗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타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이것이 다윗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들에 있으면서 사자와 곰을 만났을 때와 똑같이 절대적이고 한결 같은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가진 이 믿음은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성도들이 만날 수 있고 그들로 하여금 두렵게 만드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믿음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믿음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질병일 수도 있고, 각자가 만나게 되는 시험거리와 사회적인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으로 골리앗을 보니까 두렵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두려운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바라볼 때 두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성도는 골리앗과 같은 현실을 만나며 살지만, 그 가운데서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지하교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중 발각되어 총살을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그들에게는 공포를 주고 두려움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권력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수령에 대해 열렬히 환영하고 박수를 치는데, 이것은 그들이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것을 믿고 찾는 것은 생명을 내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발각되어 죽는 순간까지 주님을 찾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 가려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울과 백성들이 있습니다.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시험이 찾아오고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과 그 존재까지도 부정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물 위를 걷게 된 베드로 역시 풍랑이라고 하는 현실을 보며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현실을 뛰어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에 두려움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모습,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일 수도 있습니다. 범과 같은 현실 속에서 믿음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믿음의 하룻강아지 뒤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께서 반드시 보호하십니다. 이것을 다윗이 경험했고, 그 말씀을 통해 동일한 믿음을 가질 우리들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이러한 승리의 경험을 하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