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된 후, 북이스라엘의 3대 왕이 바아사입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16장에는 그 바아사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1절부터 7절까지는 바아사의 타락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부터 14절까지는 그의 아들 엘라의 타락에 대한 말씀, 15절부터 20절까지는 7일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시므리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21절부터 28절까지는 군대 지휘관이었다가 반역을 일으키고 왕이 된 오므리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었고, 29절부터 34절까지는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아합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한 결 같이 악하고 비참한 인생이었고, 그들의 통치기간도 길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타락하여 죄악과 부패의 일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그들 자신만 패역한 모습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측근들과 다음 왕에게도 그 패역과 악행이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바아사는 군대 쿠테타를 일으켜서 스스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왕조가 무너지고, 바아사와 엘라로 이어지는 바아사 왕조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바아사는 24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했는데, 24년은 다른 왕들의 섭정 기간에 비해 절대로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긴 기간 동안 그가 행한 일에 대한 성경의 기사는 유다를 침공한 것과 여호와로부터 책망을 받았다는 내용뿐입니다. 이것은 바아사가 소개할 만한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는 허송세월을 보낸 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비천한 신분을 가진 자가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기억하며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와 같이 은혜를 망각하며 살아가는 바아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연약한 우리가 가정을 만들고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앞으로도 이러한 은혜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된 일은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아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의 왕권을 이용하여 범죄하고 타락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그의 아들 엘라 역시 아버지의 악행과 범죄와 타락의 모습을 이어가며,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행하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습니다. 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반율법적인 모습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방탕하고 무능력하기까지 했습니다. 국정운영을 잘 하지 못하고, 나라가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신하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쿠테타를 통해 왕이 된 것처럼, 그의 아들 엘라는 신하인 시므리의 쿠테타로 인해 비참하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마땅히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말씀을 떠나는 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 이런 일들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말씀을 붙잡고 힘든 일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 믿음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의 믿음을 지켜내는 방법입니다. 바아사는 타락한 여로보암 가문을 심판하고 처벌하시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떠나 살 때 얼마나 큰 징계가 주어지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지 못했고, 그로 인해 불행한 가문을 물려주고 말았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은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 속임수로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이어가지만, 성경 어디에도 야곱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똑같이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던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팔렸는데, 그들은 야곱에게 요셉이 짐승들에게 찢겼다고 속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야곱은 요셉을 다시 만날 때까지 절망과 슬픈 마음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바아사와 야곱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가정을 이루며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바아사에 대한 심판과 경고의 말씀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왕상 16:1). 여기서 하나니는 유다의 왕이었던 아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견자였습니다. 하나니는 아사의 완악함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예후는 이와 같이 아버지 하나니가 한 일과 그로 인해 당한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아들 예후에게도 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니가 잘못된 길을 걷고 악행을 행하는 아사를 꾸짖었던 것처럼, 그의 아들 예후도 바아사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견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니는 위험과 핍박이 있을 걸 알면서도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들 예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전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모 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고 믿고 따르는 가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이어가는 가정을 만드실 겁니까?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고 무엇을 남겨주실 겁니까? 타락과 죄악과 심판으로 점철되어진 바아사의 가문이 아니라, 현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니의 가문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는 신앙의 가정이 되시고, 다음 세대와 후손들이 여러분들의 믿음을 잘 이어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