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끊임없는 사건과 사고 소식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팔에서 들려오는 지진 피해 소식, 일본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지진 소식, 그리고 예비군 훈련장에서의 총기 난사 사고, 또 신앙적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이단과 이방종교에 대한 소식들, 이런 소식들을 접하고 만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성경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고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고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리는모습이라고 묘사합니다(46:2-3). 이 본문은 유다왕 히스기야가 앗수르왕 산헤립의 공격을 받았을 때를 회상한 말씀입니다. 비록 산헤립의 공격으로 인해 민족적 멸망을 만나게 되었지만,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친히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지켜 본 저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고백합니다(46:1).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댈만한 소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왕이시며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고,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17:7). 우리의 삶은 동분서주의 삶이며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러한 모습으로 일관하여 자신을 의지하거나 자신에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나의 고달픈 상황과 힘겨운 문제들을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도움이 되시며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연재해나 전염병, 그리고 강대국들의 위협과 전쟁 속에 불안함과 고통을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렵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시편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산성, 요새, 방패, 목자, 바위 등과 같이 비유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실존적 믿음을 고백하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듣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방패이시며,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의 바위이심을 믿고, 피난처가 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며 붙들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생수의 근원이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이 말씀은 한 시냇물이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성중에 있는 백성들이 다 그 물을 마시며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의 구조를 알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유다성을 침략하러 온 앗수르 군사들은 성 주위를 에워싸서 성 안의 백성들이 항복할 때까지 그 포위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성 안에 비축해 둔 식량과 물건들이 다 떨어지게 되고, 그래서 백성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성 안에는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지하수 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실로암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이 적들에 의해 포위가 되더라도 물 때문에 고통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4절 말씀에 한 시내는 외부에 연결되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는 지하수를 가리키며, 그 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서 건짐 받고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과 택하신 백성들이 위험과 고통 속에 있다 할지라도, 열방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언제나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 시내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는 자들마다 기쁨이 샘솟는다는 이 말씀에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회복을 주는 이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비록 죄가 주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던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서 영적인 갈등과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으로 회복된 인생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하며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안에 거하며 살아가시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이 빠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앗수르의 침략을 받은 히스기야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보니 앗수르 군사 185천명이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신 것입니다. 이 새벽은 경계가 느슨해지고 잠이 쏟아지는 시기로, 기습적인 공격 앞에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와 같이 가장 위험하고도 중요한 이 시간마저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도우시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는 말씀도 있습니다(30:5). 그러므로 이런 시간을 주무시거나 떠나지도 않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시간으로 드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벽을 깨워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가운데, 역사하시며 응답하시는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만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46:7).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자는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경험할 수 있고, 피난처가 되시는 그분에 의해 보호하심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들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하기도 하시지만 그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의 방패가 되심을 믿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감으로 인해서, 강한 성이며 방패와 병기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피난처가 되시는 그분의 보호하심 속에 늘 승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