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5장과 병행되는 말씀으로,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주신 말씀이므로 산상수훈이라고 하고, 오늘 본문은 평지에서 하신 설교라고 해서 평지수훈이라고 합니다. 또 마태복음에는 여덟 가지 복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팔복이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에는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에 대해 기록되었으므로 사복사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복뿐만 아니라 화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인생이 복과 저주, 축복과 재앙의 상황 가운데 놓여있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좁은 문과 넓은 문, 의인과 악인, 형통과 파멸, 그리고 복과 저주에 대해서 알려주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길에 대해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주린 자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말씀으로, 영적으로 가난하고 주리고 우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우리 자들이 복되다고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울어야 할지 고민해보고, 울어야 할 부모의 사명을 발견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의 무의미함, 그리고 무가치함에 대해 깨닫고, 아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자신을 보며 울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도는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죄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과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갈망하며 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함과 믿음의 회복, 그리고 영적인 배부름으로 인해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보다 더 큰 내세의 기쁨이 예비되어 있는데,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영육간의 만족함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불순종의 모습들, 그리고 가족과 자녀들의 부족한 모습들을 보며 슬피 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살지 못하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는 현실 때문에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신앙의 자리에서 벗어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분명히 범죄의 일이고, 그 결과는 아픔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는 이러한 일들을 보며 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2-23). 여기서 인자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인하여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의 공격을 받고 욕하고 미워함을 받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내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시며 기뻐하고 뛰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하늘, 즉 마지막 심판 후에 있을 천국에서 상급이 예비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북한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예비되어 있는 면류관과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예비된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며 온전히 믿음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과 가족들을 보며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주를 떠나서 세상의 부요함만을 추구하며 사는 자들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6: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역시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는 자들이란 심령이 부유한 자들로서 물질과 세상의 풍성함 때문에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의미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3:17).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점검하며, 심령의 부유함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발견하고 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세상 사람들을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칭찬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6). 물론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고 믿음 없는 자들과 섞여서 구별되지 못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방인의 마음을 의식하고 그들의 마음까지도 흡족하고자 했기에 칭찬을 들었지만 이것은 화가 있을 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믿음 없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들, 가정에 속한 자들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믿음과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따라가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연약한 자신을 위해 울고 믿음 없는 자녀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눈물과 애통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회복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여서 우리가 속한 가족과 공동체 모두가 하나님을 즐겁게 찬양하며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