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실 메시아 왕국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그때 자신이 차지하게 될 위치와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 간에 서열문제와 함께 경쟁 심리를 불러일으켰고,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그들은 예수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1). 이미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고 가르치는 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자기생활 속에서 준행하고 가르치며 살아가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5,6). 그런데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생각하지 않고, 변화산에서 겪은 영광을 기억하며 자신들이 얻게 될 영광과 함께 그들 사이의 서열에 대한 관심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자가 천국에 합당한가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물리적인 방향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문에서는 마음의 변화로 인한 행동양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즉 서열과 높아짐에 대한 관심에만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의 교만한 마음이 돌이켜짐으로 인해 겸손한 삶과 모습이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어린 아이의 보편적인 특성은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성과 순종의 모습, 그리고 가르침에 대해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순종하며, 그 말씀에 대해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수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며, 주님의 말씀이라면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가기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만 그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양육되고 성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4). 여기서 강조점은 자기를 낮추는 것에 있습니다. 이 낮춘다는 말의 의미는 굴곡이 있는 것을 다져서 평지를 만든다는 의미가 있고, 고전 헬라어에서는 사회에서 힘이 없고 보잘 것도 없으며 순종만이 요구되는 사람들을 의미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신약에서는 낮아지다, 비천해지다, 겸손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로 표현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겸손하여서 자발적으로 남을 섬기고 순종하는 종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가 천국의 시민이며 그 가운데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겸손한 삶의 본이 되시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29). 우리에게 이런 예수님을 본받는 겸손함이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양육하는 자녀들과 가르치는 학생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6). 여기서 작은 자는 세상에서 지위도 없고 힘도 가지지 못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실족이라는 것은 고의로 그들이 걸려 넘어지도록 한다는 뜻으로, 오해하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씀은, 순수하고 믿음이 약한 자들을 죄의 길로 유도하여 죄를 범하게 한다는 직접적인 행위와 이런 자들을 거절하고 무시하며 낙담시키고 좌절시키는 간접적인 행위 모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할 자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든 부모들이 경계해야 할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가도록 방치한다면, 주일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을 가로막고 걸림돌이 된다면 그 부모들이 바로 실족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어린 아이들이 실족하여 지옥 불에 던져지도록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제일 편하고 익숙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담당 교사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이 주님을 만나도록 돕고 인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하거나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예배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회하다가 선생님을 발견하면 그제야 예배실로 들어갑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가 되어야 하고 그런 예배자로서 아이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가 주일을 잘 준비하지 못해서 지각하거나 예배를 성수하지 못하면 이런 아이들은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교회도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교사들은 자신들이 신앙생활하는 모습이 자녀들과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전달되어야 함을 기억하며, 바른 신앙의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연자 맷돌에 대한 언급까지 하시면서 강조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7). 우리는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똑같이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실족케 하는 일들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러한 세상의 위협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그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부모된 우리가 먼저 바른 믿음, 참된 신앙의 모습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명심하고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신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그러한 자로 양육하시고, 믿음 안에 든든히 세워져가는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