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자신의 뒤를 이어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입니다. 3차 전도여행 당시 3년 정도를 이곳에 머물렀으며 심혈을 기울여서 복음을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는 그 곳이 선교전략상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로마제국 당시에 동과 서를 이어주는 도시였으며, 에베소 주위에 230개의 소도시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카이스트로스강와 지중해가 만나게 되는 지리의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복음이 뿌려질 때, 그 파급효과는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모든 지역을 알고 파악한 만큼 이 곳의 복음 전파에 심혈을 기울인 것입니다.

   이렇게 번화한 삶의 번영에 있어서 최상의 도시였기에 그만큼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돈이 넘쳐났기에 부정, 부패, 타락이 넘쳐났습니다. 죄악이 넘쳐흘렀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구도 그만큼 컸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최고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최고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질만능주의가 당시 에베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 종교들도 이곳에 쌓여있었습니다. 물질적이며 사회적인 부패만이 아니라 영적인 부패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이런 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의 디모데에게 주어진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의 상황은 에베소와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은 여러 권면을 합니다.

   첫 번째로 이단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다른 교훈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를 것을 권면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성도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이단들이 일어납니다. 이단들은 부흥의 시기에 태동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은 꿋꿋하게 이겨내야 합니다. ‘다른 교훈이라는 것은 성도를 진리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입니다. 본문은 바른 말다른 교훈을 대조합니다. ‘바른이라는 단어는 원어를 살펴보면 경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는 것은 경건에 일치하는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들을 경건에 이르도록 합니다. 때문에 말씀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점들이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교훈바른 말과는 달리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요소가 전혀 없는 말입니다. 인간을 절망에 빠트리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다른 교훈입니다. 이단의 사슬에 매이면, 생명에서부터 멀어지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이단은 변론, 언쟁, 투기, 분쟁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 안에는(비록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에게는 다툼과 싸움밖에 없기에 성도들은 이런 자들로부터 떠나 살아야 한다고 기록돼있습니다. 오늘 5절 말씀에 뒤에는 원래 너는 그런 자들에게서부터 떠나라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단들에게서 믿음을 헤치고 절망을 주는 모든 것에서부터 떠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고 붙들고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드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공격이자 최고의 방어입니다. 악은 누룩처럼 번지기에 악에 물들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하는 만큼 좋은 친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바르게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들과는 멀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다른교훈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부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실제 생활에서 부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하려는 마음이 아닌,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은 파멸과 멸망에 빠진다고 합니다. 경건과 자족하는 삶과 분명히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파멸과 멸망을 향해 가면 안 됩니다. 부하려는 욕심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하는 탐심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이 시험에 걸리고 올무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을 망치는 어리석은 욕심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비극적인 일들은 결국 탐심으로부터 일어납니다. 10절에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이로 미혹을 받아 믿음으로부터 떠나가게 됩니다. 믿음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돈 자체가 악의 실체는 아닙니다. 우리도 돈이 필요하고, 총회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헌금을 받고, 선교에도 돈이 필요하며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데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심령의 상태는 잘못된 것입니다. 선의 근원은 믿음인데, 돈을 쫓아가니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돈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믿음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탐심은 마약과도 같으며, 말씀을 튕겨내고 참된 믿음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유익이 됩니다. 자족은 많은 소유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자족은 우리가 죄를 갖게 하는 욕심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허락하셨다는 믿음을 갖고 소망하는 것이 자족입니다. 반대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탐심입니다. 이로서 죄가 잉태되고 이 죄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상황이 에베소, 그리고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복음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에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의 마땅한 마음가짐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소망을 품게 되고 이로서 자족하게 되며 결국에는 경건이 일어납니다. 자족하면 경건에 유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합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허락하시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자족하는 마음에 대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을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간다고 기록합니다. 죽을 때 그 무엇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다 먹이십니다. 하물며 우리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광의 성도들이 신앙을 갖고 살아가며 성장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