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실 때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이며 선물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들을 상기시켜주면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되어져야 할 성숙한 모습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권면한 내용, 즉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모습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하였습니다(4:2).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사랑과 거룩한 삶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의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겸손은 성경 곳곳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모든 겸손이라는 표현에서와 같이 모든 면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었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지난 한해를 생각하고 지난 일생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2:6-8). 이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덕이며, 때문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덕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오래 참는 것은 사랑의 속성입니다. 사랑한다면 조급하고 섣불리 징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상대방의 허물과 약함을 덮어주는 것을 친히 보여주셨고,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그러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느니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립니다(10:12). 베드로 역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4:8). 이러한 은혜를 우리가 입었고, 이와 같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모습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 두 번째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4:3). 여기서 평안은 화평을 뜻하는 말로, 공동체 안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4-6).”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일치와 연합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모습은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5:20). 사회가 일치되지 못하면 소속된 사람들은 불안함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됨이 실천되고 일치가 이루어지면 모두가 다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성도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고, 이를 위해 힘써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일치와 연합은 무조건적인 일치와 연합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일치와 연합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불의와 죄악을 포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과 진리 안에서만 일치되고 연합되어야 합니다. 의와 불법은 함께 할 수 없으며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기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아야 합니다(고후 6:14). 또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해야 합니다(5:11). 우리 성광교회는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인도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성도들은 불의와 불법과 어둠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일들을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세 번째 모습은 직분 받은 자로서 주의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직분을 임명받았습니다.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받은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생각과 함께 직분을 잘 감당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제시되고 있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는 교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는 주님께서 세우셨고 주님께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직분 받은 자로서 충성하는 것은 주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세상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삶에 물들어있어서, 영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전하고 실천하며 힘써 봉사하는 일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즐거움과 만족만을 추구한다면 진리는 지켜질 수 없고 교회는 약화됩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살기 위해서 힘써 노력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헌신한다면, 성도들의 영성은 살아나고 교회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도와 신앙생활하는 자들이 모범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노력과 헌신을 통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삶, 이러한 성화의 삶을 통해 교회를 든든히 세우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