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병들어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리신 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로부터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지만, 계시던 곳에서 이틀 동안 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다가 나사로가 죽은 뒤에야 그에게로 가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예수님만이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 되실까요? 하나님께서 다른 종교들에게서는 구원을 위한 방법을 예비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길을 딱 한 가지로 한정지으셨고, 그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복음이며, 생명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고 또 믿고 있다면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태신자들에게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사랑이시며 생명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과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이 사랑과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그의 누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11:3). 또 본문에는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1:5). 이것은 유대인들도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라고 말할 정도로 확실한 사실이었습니다(11:36). 게다가 예수님께서도 나사로를 우리 친구라고 표현하시며 그에 대한 친근함과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11:11). 이러한 표현들은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풍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믿는 자들에 대한 풍족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은, 믿음이 없는 우리의 태신자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이러한 사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을 그들에게도 심겨줄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25). 스스로를 죽은 자를 살리시며 생명의 원천이 되신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11:25-26), 영혼과 육과 더불어 현세와 내세를 모두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영생을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어지며, 멸망하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류에게는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더 많이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가 항상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천국의 시민이 된 우리들은 더 이상 이 땅에 미련을 두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누구나 이런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14:6). 그러므로 생명을 얻어야 할 자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먼저 첫 번째는 피 흘림으로 말미암은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17: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생명입니다. 죽어있는 나사로를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11:43).” 그러자 죽은 것이 확실해서 냄새까지 났던 나사로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무덤에서 나와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역사이며, 성도들이 끊임없이 말씀을 듣는 자리에 나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우리가 그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위해서, 또 우리가 품고 있는 태신자를 위해서 마음에 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가진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11:41-42).” 성도들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기도할 때,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것처럼 다 들어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14:14). 이것보다 더 큰 축복과 은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고 그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11:44).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유를 그 어떤 것도 침범하거나 방해하거나 속박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그것이 죽음이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는 굴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와 아픔과 근심과 걱정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풀려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은 자유를 누리고 선포하셔서 많은 영혼들을 참 생명과 자유의 길로 인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