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신앙하는 마음을 갖고, 모든 행동에 있어서 경건한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신앙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 자체가 늘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와 교제를 할 때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도 경건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의 기본적인 경건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모습들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며 읽고 묵상하는 것은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거룩한 삶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과 신령적인 교제를 이어가며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은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교회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포함해서 성도들과의 교제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봉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일이 주어지든지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며 봉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헌금을 하는 생활이고, 여섯 번째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들이 바로 신앙생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모습이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의 지침입니다. 이러한 경건생활은 성도들의 환경과 감정 상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만나고 시험을 겪게 되었을 때는 느슨해지고, 힘든 일 없이 형통할 때는 열심히 감당하게 되는 일들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만나고 시험을 겪을 때도, 형통할 때와 마찬가지로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사실 경건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때, 성도들은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얻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명하고 간절한 소원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로 내려가신 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셨는데, 그는 맹인이며 거지였던 바디매오였습니다. 전통 사본에 의하면, 당시 바디매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는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10:47).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부르짖을 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고쳐주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분명하고도 간절한 소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시라는 말을 듣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기를 원한다고 부르짖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동시에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앙하고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우리에게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또 그 마음에 간절함이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구걸을 통해 누군가가 쥐어주는 것들에 의존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눈을 뜨고, 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마음속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소망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다는 것은 알맹이 없는 쭉정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라 형식적인 모습만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성도들은 바디매오와 같은 믿음과 간절함이 있어야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간구할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하는 소원을 품고 살았듯이, 성도들 또한 소원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한 모습들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결국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는 신령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찾고 만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간절한 소원이 있고, 신령한 갈급함이 있는 자들은 기도하는 자리로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원이 없다는 것이고 간절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바디매오는 비록 예수님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소식을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들었고, 그 들음은 곧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발생시켰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눈을 뜨고 싶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 예수님이 자신에게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이것은 바디매오가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돌아봐달라고 하면서 간절히 예수님을 찾고 기도한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시끄럽다며 제지하고 방해를 했지만, 마음에 간절함이 있고, 예수님께서 그 간절한 마음을 만져주시고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간절한 기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성도가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고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을 찾고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곧 그분을 찾는 기도의 모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통해, 그에게는 예수님께서 구원자라고 하는 믿음 또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는 자신이 찾고 기도할 때 들으시는 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한 구원자이신 메시아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나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그분에 대한 말씀을 듣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말씀을 통해 그분을 믿고 만나며 살아갑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10:17).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근거한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의 연약함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바디매오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기에 신령한 소원을 가지고 부지런히 예수님을 찾으시고, 예수님께서 회복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