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은 시편 126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로, 자신들을 돌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고 고백합니다(126:1). 이것은 포로였던 자신들이 다시 돌아가는 것은 예상하지도 못했고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꿈에서나 겪을 수 있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일은, 바사왕 고레스가 포로였던 유다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냈던 일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것은 꿈에서나 겪을 수 있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 고국에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포로였던 자들이 돌아온 그곳에는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있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의 귀환을 보고 환대하면서 잔치를 열고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왔던 환경과 의견의 차이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고 불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또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치안의 공백이 있었고, 아직도 바벨론에서 풀려나지 못한 포로들에 대한 불안한 마음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편의 저자는 이러한 문제와 열악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기쁨은 이토록 큰 것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죄의 포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이제는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바벨론에서 포로였던 자들이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올 때 느꼈던 기쁨과도 같은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기쁨에 안주하지 않고, 아직도 바벨론에 포로로 남아있는 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먼저 믿음을 가지게 된 우리들이, 아직도 믿음이 없고 구원의 은혜를 경험해야 할 자들을 위해 품어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일보다 더 큰 은혜는 없고, 죄에서 해방 받은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진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예배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와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할 포로들, 아직까지 믿음이 없는 그들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시고,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6-8).”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생명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흥분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각성해서 착하고 선한 마음을 다짐하도록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복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이 패역한 죄인이므로 살 길도 없고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데, 나의 그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길이 열렸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는 자들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를 붙잡도록 하는 것이 복음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랑과 얻게 된 유익, 육신의 축복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착한 일을 부추기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깨닫고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도록 인도하고 선포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받아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백성들은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라고 기도합니다(126:4). 여기서 남방은 팔레스틴과 시내반도 경계이며 가나안 남부인 네게브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 지역에는 평소에는 물이 없이 말라있는데,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길이 생겨나고 그곳이 바로 남방 시내입니다. 비록 그곳에 물이 없었을 때는 죽은 것과 같은 땅이었지만, 비가 내리고 물이 흐르면 씨앗이 움트고 생명이 자라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포로를 이러한 남방 시내들 같이 보내달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볼 때, 남은 포로들을 보내주셔서 자유를 허락해 달라는 요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는, 물이 없으면 말라죽는 것과 같이 죄의 포로가 되어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은 우리의 영혼에게 은혜의 단비를 내려달라는 의미의 고백입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부어지는 단비와 같이 메마르고 황폐한 심령에 성령의 단비를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회복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간구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심기신 믿음의 씨앗이 자라고, 말씀으로 인한 성장과 결실의 축복을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심으로 기쁨으로 단을 거두셨습니다. 그 은혜로 기쁨을 경험하게 된 여러분들 역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메마른 심령 가운데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자라도록 하며 생명의 열매를 맺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