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본 서를 기록하던 시대의 어린 아이들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늘 관심 밖에 있었으며 여인들과 함께 사회적인 약자를 이루던 자들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장성하기까지 하나의 인격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성경만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의 묘사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오병이어로 예수님께서 먹이신 군중의 수가 오천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장정들만 계수한 수입니다.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은 그 숫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복음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풍조 속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히 가치관이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주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존귀한 인격으로 대우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한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측면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에덴동산에 거닐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 것을 명하신 것과 상이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복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어린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통로임을 믿어야 합니다. 부모들의 무언가 하나님 앞에서 더 낫게 여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각자의 역할을 주신 것이지요.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것은 모세 오경, 특히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강조되고 있습니다. 순종할 것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을 사형에까지 처하는 율법까지도 있었던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관계적인 이유나 가족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제사장에게 넘기고 제사장이 사람들에게 넘겨서 돌에 쳐서 죽이기까지 했던 것은 공동체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보안장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하셨기에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가르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공동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완전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완전한 사랑을 베풀고, 물심양면으로 완벽하게 채워주시기 때문에 존경하고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부모를 경외하고 그들에게 순종하는 당위성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깨닫고 순종하는 성광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하게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훈계하고 가르칠 때 자녀들의 감정이 상하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가르침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노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비인격적으로 대하지 말 것을 주의시키는 말입니다. 당시 사회가 앞서 다루었듯이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들에게도 그런 경향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부모들에 의해 아이들이 어긋나고 삐뚤어지는 원인은 감정적인 훈계에 있습니다. 부모가 감정적으로 아이들을 체벌하고 감정적으로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내뱉으면 결국에는 아이들의 마음에 큰 구멍을 만듭니다.

   이 말씀은 부모들의 훈계를 금지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녀들을 훈계하고 때로는 체벌도 권유하는 말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징계를 받지 않는 자녀들이 사생아라고 하며, 특히 잠언에는 매를 아끼는 자는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자식을 근실히 징계함을 잠언의 말씀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식은 훈계해야 합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자식이 잘못했는데 방치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직무유기입니다. 자녀의 방종을 그저 두고 보는 것은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잠언의 말씀처럼 훈계하고 근실히, 사랑으로 징계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특별히 아비들을 향한 권면입니다. 아비들이 가정의 장입니다. 아버지들이 바로 서야 합니다. 아버지들이 본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들이 가족의 거룩성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들이 기도해야 하고 아버지들이 말씀을 사모하고 아이들을 말씀대로 바르게 훈계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무너지면 가정이 흔들립니다. 아버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함을 오늘 말씀에서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들을 훈계하기를 주저하면 안 됩니다. 주저하지 말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으로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면서 근실히 훈계해야 합니다.

   이렇듯 가르침이 이루어지고 신앙의 훈련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너무나도 혼탁하고 어둡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매우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견뎌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6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되고, 기도와 간구로 매일을 살아가며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 세상을 능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능력으로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 특별하게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기에도 너무나도 나약한 다음 세대는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가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훈계하고 양육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빛으로 나타나고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마지막 날에 모두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성광교회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정이 바로 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가정,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광의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