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이 기록된 때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 유배 이전의 시기인 A.D. 80-90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부활 후 세 번째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아침을 준비해 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전도자의 사명을 일깨우는 데 있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아침식사 후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었습니다.(16:16; 6:69). 또한 마지막 유월절 저녁식탁에서 주께서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을 말씀하실 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었고(26:33)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는 그의 단호한 마음을 표현했었습니다(26:35). 그러면서도 그는 그 밤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수치스러운 연약과 실패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전에 호언장담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겸손하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며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아신다는 말은 초경험적 직관을 통하여 절대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존엄하고 고귀하고 무조건적인 절대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이었고, 베드로의 사랑은 형제와 친구 사이에서 싹트는 인간적이고 인정적인 필로스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요구하신 것에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모범 답안과는 다른 답을 한 것이다. 그런 베드로이지만 주님은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이미 주셨던 사명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 그를 전도자로 그리고 목양자로 부르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를 향한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은 우리들은 베드로처럼 고기 잡는 옛 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전도와 목양의 사명을 기억하고 그 사업을 위해 온전히 바쳐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특히 먹이라는 말이 아주 약한 상태에 있는 양을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돌보다는 의미이기에 주님이 말씀하신 아가페의 사랑으로 전도하고 목양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아니면 늑대 같은 들짐승들이 올 때 양떼를 버리고, 사명도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두 번째도 동일하게 물으시고, 베드로도 동일하게 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은 첫 번째 것과 달랐습니다. 처음엔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제자들의 사명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이 으로 자랐으면 어린양의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 되고 꾸준히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먹이라치라로 바뀐 것은 돌보는 초보적 목회에서 제자 훈련으로 성숙한 양으로 키우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세 번째도 동일하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하신 사랑의 단어는 이제 아가페가 아닌 필로스로 사용하십니다. 베드로를 선한목자로 살피시고 그가 아가페의 사랑으로 올라서지 못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과거 자신의 실패한 일이 생각나면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당황합니다. 그래서 아시오매, 아시나이다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용한 첫째 아신다는 단어는 예수님이 직관적으로 아신다는 뜻이고, 다음 아신다는 경험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 베드로는 주님이 전지하심으로 다 아시고, 지난 3년 동안 경험을 통해 나의 사랑을 아실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주님 사랑을 밝히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주님의 양떼를 완전히 위탁하셨고, 주님의 사명을 제자 베드로에게 위임하십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으신 후 목양의 사명을 일깨우신 것은 목양의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후5:14-15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또한 롬14:7-8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고 하십니다. 주님의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주님이 위임하신 일들을 위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주님 오실 그 때까지 부활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주님 앞에 당당하게 서서 면류관 얻는 성도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