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사랑이라고 하면 고린도전서 13장을 떠올릴 것입니다. 사랑 장만큼 사랑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는 것이 요한일서 4장입니다. 7절에서부터 15절정도 되는데, 이 사이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30회 정도 등장합니다. 요한일서 자체가 사랑을 주제로 교훈을 하는데 2:7-11에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랑 실천, 3:13-24에는 사랑에 빚진 자로서 사랑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고 3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사랑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사랑의 실천을 아주 강렬하게 가르치고 있는데, 사랑이 없는 사회는 어떨까요? 끊임없는 분쟁과 미움 그리고 다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근심, 번민, 슬픔이 다가옵니다. 우리 성광교회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하는데 있어 문제가 생기가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능이 점점 상실되게 됩니다. 모임은 의미가 없어지며, 행복이 사라지게 됩니다. 행복이 사라지니 성도들의 활력이 없어지며 무기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사랑을 회복한다면, 활력이 생기며 교회에 나와서 섬기는 것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많은 삶의 열매들이 맺어질 것입니다. 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해나가는 성광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요한이 오늘 권면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육신적인 사랑이 아닌, 거룩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닮아가서 그의 모습들과 그의 향기가 풍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누리며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은 이 거룩한 사랑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다고도 말합니다. 성광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새 사람이 되어졌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백성들입니다. 외부 사람들이 성광교회를 방문했을 때, 냉랭하고 사랑이 없고 다툼이 가득하다고 느끼면 안 되겠지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닮아 사랑이 실천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그렇습니다. 9-10절 말씀에 나와 있는데,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을 말합니다.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희생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회목 제물로 드리게 됨으로서 그 은혜로 인해서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화목제물은 헬라어 힐라스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게 되는데, ‘유화 제물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게 되는데, 이런 제물로서 그리스도는 그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식게 만듭니다. 로마서 3:25을 보면 예수님 자신이 화목제물이라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친히 받으셨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받아 새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사랑은 성령의 역사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2-16절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영적연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됨으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성령을 통하여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심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쉬지 않으십니다. 쉬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적용시키십니다. 마음에 감동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눈물도 흘릴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이런 감동이 있을 때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감동시키고 계심에도 모른척하게 되면 어떤 변화나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을 인정하고 그 분의 역사하심도 인정하며 살아가는 성광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제나 형제자매 사랑의 모습들이 로부터 시작되고, 실천되고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사랑이 우리를 담대하게해주기 때문입니다. 17-18절 말씀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담대하게 해줍니다. 성경은 우리를 담대하게 해주기 때문에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심판 날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심판 날에 성도를 담대하게 해줍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고 순종한 사람들은 그 심판대 앞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생을 얻었기에 담대한 것이며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상급이 약속돼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지신 속성을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 사랑 가운데서 실천하면서 살아갔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우리는 주님과의 연합한 존재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19-21절 말씀에 등장하는데,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하는 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특성에는 궤휼과 간계가 있습니다. 이런 궤휼과 간계는 분쟁을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 사랑, 곧 형제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따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며 이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삶입니다. 교회는 행복해야 합니다.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잘 간직하고 감당하길 소원합니다. 오늘 모든 성도가 이를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