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스올의 뱃속, 깊음 속 바다 가운데, 큰 물결, 산의 뿌리, 땅의 빗장 등의 단어들이 요나서에 등장합니다. 이 모든 단어들은 요나의 큰 절망을 표현합니다. 절망이란 강한 힘으로 우리의 인생을 크게 위협하고 인생의 방향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들이기에, 이런 절망을 만나게 되면 인생 자체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과거에만 해당되는 사실들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가 그저 말 뿐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둠 속에서 희망을 갖는 것은 정말 힘들지만 오늘 성경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는 길에서 성문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사람들이 한 죽은자를 메어서 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죽은 자는 한 과부의 독자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나오고 있는 행렬을 예수님께서 보시게 된 것입니다. 장례는 슬픕니다. 이 과부에게 소망이었던 아들을 장사지내야 했던 상황이 바로 절망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절망은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한 독생자의 죽음이 절망의 근원입니다.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결과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합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죽음이 낳는 절망은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지속됩니다. 가인과 같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423~24절은 라멕의 노래에 해당됩니다. 라멕은 자신의 죄악을 뻔뻔하게 합리화하고 포장해서 외면합니다. 그리하면 그 모든 일들이 해소될 줄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라멕과 같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로 인해서 절망하는 일들을 어떻게든 하나님 없이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리에 저항해봅니다. 세속적인 일에 빠져 술에 취하고 세상에도 취해 살아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범죄도 저지르면서 자신을 위로해 봅니다. 많은 우상들이 그런 상황 속에서 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가운데 자신들이 만든 것들에 집착하고 노력할수록 절망은 더욱 깊어집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노력과 성취로 해결될 일이었다면, 오늘날만큼의 문화와 과학의 발전으로 세상의 고통과 절망들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어야 할 텐데,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절망은 깊어져만 갑니다.

   오늘 여인의 절망은 어디서 왔습니까? 아들의 죽음에서 왔습니다.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절망의 가장 근본적이며 결정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근원을 모르는 것이 원인이었고, 원인을 안다고 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해결의 방법과 희망의 길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를 향한 어떠한 의무도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와 원인들을 아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으로부터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울리 말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슬퍼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말 뿐인 위로가 아닙니다. 그 분은 진심으로, 현실적으로 슬픔과 절망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절망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청년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권위의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기적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선지자들이나 믿음의 선배들이 그런 기적들을 베풉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서가 아닌 주님께 기도함으로서 주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풉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분도,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도, 죽음가운데 생명을 허락하시는 분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히 죽었던 이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도 살아나고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어머니는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 절망했지만, 주님의 위로를 받고 그 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슬픔 대신에 희망과 기쁨을 베푸셨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것처럼, 죽은 청년을 살리신 것처럼 세상에 절망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파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절망과 슬픔가운데 있는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끊임없이 찾아와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에 현장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삶 속에서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사야 59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능력 없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응답하시고 능력의 손 내밀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물론 이 세상 살아가는 누구나 절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갖고 있는 모든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예수님 만나지 못하고 절망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우리의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형제자매, 이웃들, 사랑하는 모든 동료들, 예수님 밖에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모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봤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 앞에는, 절망이 아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엎드리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 그 능력과 사랑을 만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