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복음의 향기를 나타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이 선포된 모든 사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이 모든 것을 나타내면서 살아가길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살아가는 일들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요구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세상적인 삶의 원리와 반대가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성경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도 주어라,’ ‘주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바보스러운 자세들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이렇게 가르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자신을 비우면 충만하게 되며, 죽으면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 다르고 독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로마서 12장에 말씀하고 있는 삶의 제사,’ ‘영적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의 말씀 속에서 보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축복하는 삶입니다. 14절을 보면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본문의 축복은 삶과 직결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축복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까지도 축복하라고 합니다. 사랑으로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44에서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는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어찌 선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에서 주님은 이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십니다.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기는 마음은,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쉽지 않지만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에 수용하고 지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왜 우리 원수들을 축복해야 합니까? 우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는 행동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과거에 구원받기 전에는 그런 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도 언젠간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면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며 그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천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스데반 집사가 그리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광교회가 그렇게 할 것을 믿습니다. 무디는 자서전에,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니 목회자들이 나오고 술주정뱅이들을 축복했더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로 변했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조차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고 선대해야 합니다. 요일 3:18에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1960년도에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어두움은 어두움을 쫓아낼 수 없고, 빛이 있어야만 사라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 때 어두움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선을 도모하라고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39-42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든 이들에게 선한 마음을 품고 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들을 도모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말을 많이 하고 선한 일들을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모여서 하는 모든 일들이 선한 일들을 추구하는 모임이어야 합니다. 비판하고 불평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늘 서로 축복하고 위로하고 기뻐해주는 모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따르는 것이 행복이자 축복입니다. 시편 37:3-4에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땅에 머무르는 동안 주님의 성실을 먹을 것으로 삼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모임들이 선을 도모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18절 말씀에,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합니다. 화목한 교회, 화목한 가정, 화목한 전도회, 화목한 구역, 화목한 주일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모일 때마다 화평이 깨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용서하지 못한 형제자매가 있으면 안 됩니다. 화목하지 못한 지체가 있으면 예배가 되질 않습니다. 화목이 깨지면 전쟁이 벌어지고, 다툼이 일어나고 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분열하고 미워하고 싸워서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결은 성경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습니다. 정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미워했어도 선대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화목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멸망당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대신 예수님으로 심판받게 하시고 화목제물 삼으셔서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롬 5:10-11에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화목이 지켜지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 화평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루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5:18-20에 등장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세상과 화목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죄를 돌리지 않게 하도록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화목의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모든 사람과 화목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 5: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화목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습니다.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입니다. 야고보서 3:18에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합니다. 의의 열매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광교회는 언제나 서로 축복하고 선한 것들을 도모하며 화목을 이뤄나가야 합니다. 이런 교회를 함께 이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