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 담임목사 설교
돌아오는 길 (창세기 16:1-14)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갈이라는 여자는 사라의 몸종으로 아이를 못 낳는 사라를 대신하여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당시 사회적 상황으로 볼 때 이런 일들은 관습적으로 허용되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고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굉장한 시험과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하갈은 아들을 낳자 주인 사라를 멸시하게 되고 결국 하갈은 사라에게 미움을 받고 광야로 도망쳐 방황하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 가운데도 광야와 같은 세상 속에서 방황하고 유리하면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갈과 같이 방황하는 모습이 있으면 모두 떨쳐 버리고 우리의 인생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이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왜 방황을 할까요?
 첫째, 성도가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를 맺으면 방황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사라는 아이를 갖지 못해서 매우 초조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간의 방법을 선택하여 그녀의 몸종을 아브라함에게 붙여줬던 것 입니다. 당시의 관습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서 불러낸 가정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겠다고 세우신 가정이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들 통하여 자녀를 주시겠다는 계획과 뜻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마땅한데 인간적인 생각과 초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서 당시의 인간의 사회 속에서 인정되어지는 통념상의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사회적인 통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이 말씀이 우선이 되어야지 어떤 윤리도 관습도 통념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세상의 법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놓여져서는 안 됩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통념을 따라서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를 맺음으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잘못된 생활의 태도 때문입니다. 하라는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자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멸시’는 ‘가볍게 여긴다.’라는 뜻입니다. 하갈이 아이를 낳기 전에는 주인 사라를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음으로 그녀는 더 이상 종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종이면 종의 모습으로 주인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것 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에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의 위치를 떠난 천사가 사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장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떠나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사단이 되었던 것처럼 하갈도 종으로서의 본분을 떠나 주인을 섬기지 않고 교만하여 주인을 멸시하게 되어 쫒겨났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도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믿는 믿음의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어떤한 자리에 있던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마땅한 본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은혜로운 성도인 것입니다.
 셋째, 학대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만약 하갈이 못되게 굴더라도 사라가 마음을 고쳐먹고 하갈에게 사랑으로 대하였더라면 아마 하갈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고쳤을 지도 모릅니다. 방황의 생활은 고달픈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방황을 끝낼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문제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새로운 용기가 납니다. 나의 잘못이 뉘우쳐 지고 회복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황하는 하갈에게 돌아갈 것을 재촉하십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방황의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믿음의 자리이고 기도의 자리이며 말씀의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 성광교회 성도들은 방황을 지금 즉시 끝내서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축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