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5일 담임목사 설교
만 남 (요1:43-51)
오늘 본문은 나다나엘과 예수님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당시 나다나엘은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율법에 해박한 사람이었고 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친구인 빌립이 찾아와서 그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메시야가 나사렛 예수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를 그렇게도 기다렸던 나다나엘의 반응은 기쁨의 반응이 아니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는 실망의 반응이었습니다. 당시 나사렛은 가난한 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사렛에 사는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편견은 하나님의 은혜를 막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할 땐 편견이 없는 열려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인간의 방법이나 인간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와보라’했을 때 그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신하는 나다나엘을 바라보시며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함은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나다나엘은 실수투성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실수투성인 우리도 나다나엘처럼 ‘참 성도’라고 인정받는 성도님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서 물어봅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그때 예수님은 그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그곳에서 성경을 연구하며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신앙과 기도의 내용과 열망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 나다나엘은 예수님 앞에 엎드리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믿고 만난 사람이라면 왜 내가 교회에 나와야 하며,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충성해야 하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만을 섬기겠다고 하는 나다나엘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서 우리들의 앞날에 큰일을 보고 좋을 일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나다나엘은 어떠한 고백을 했을까요? 첫째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 인 줄 몰랐던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예수님의 참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예수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앙도 약해지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나다나엘의 고백이 성도님들이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은 예수님의 백성이란 의미입니다. 임금과 백성의 관계에 있어서 백성은 임금에게 자신의 전체를 바쳐서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임금이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당신만 섬기겠다는 헌신과 충성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고백이 있는지 뒤돌아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나다나엘과 같은 고백이 있다면 성경에서 말해주듯이 성도님들의 앞날에 나다나엘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되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이 고백을 가지고 나를 뒤돌아보며 헌신할 수 있는 귀한 성도들이 되셔서 성도님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능력과 소원하는 일들마다 가장 귀하고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