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드러내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확증하고자 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리면서 그 당시 교회를 유혹했던 이단들의 교리로부터 성도를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셋째는, 예수 안에서 변화가 되고, 바른 신앙으로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온전하게 세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믿고 온전한 자로 세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새 사람으로서 즉, 변화된 자로서 세워져야 합니다. 물로 포도주로 바뀐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로 새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옛 구습을 버리고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관습적이고 타성적인 신앙생활은 안 되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 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고후 5:15절을 보면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게된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의 존재가 새 사람이기에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셋째는,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위해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즉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 순종하는 새 사람이기에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했듯이 우리의 삶도 존재론적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합니까? 첫째로, 5절의 말씀처럼 순종의 자세입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순종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순종이 나타났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믿지 않았고, 그래서 순종하지 않았다면 오늘 본문의 기적 즉, 물이 포도주로 변화했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등장인물들이 그랬듯이 저와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말씀을 믿어 순종해야 진정한 변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첫 번째 표적은 믿음의 순종이 진정한 변화와 기적을 가져온다고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께 순종할 때 주께서 베푸시는 변화와 기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일들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정결예식을 통해 변화가 나타납니다. 6절 말씀입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결 예식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던 정결 예식은 구별하는 일이었습니다.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약에 의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결해져야했습니다. 제사장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결예식을 거쳐야했습니다. 거룩한 자가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늘 거룩하고 정결해야 했습니다. 이를 유대인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거룩하고 정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함을 유지하고자 정결 예식을 행했던 것입니다. 순서는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유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 사람으로서의 변화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로 바뀌어야 합니까? 우리는 제자공동체로 존재하며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이를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 혈육보다 중요한 것이 주님입니다.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 때문에 혹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봐 요한은 마리아를 그의 어머니, 예수의 어머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혈육관계, 가족을 소홀히 했다거나 경시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과 마리아는 육신으로는 어머니와 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자여는 불어로 최상급 호격인 마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굳이 여자여라는 표현을 쓰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뜻과 목적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혈육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에 더 초점을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여라고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은 사명을 위해 사셨듯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를 보면 본문 4절에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사역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십자가와 영광을 연결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는 복음 전파에 힘을 다해 수고하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진정 변화된 새 사람으로서의 삶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