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빛이 어둠에 비치면 어둠이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빛이시고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빛이시고 그 빛으로 인도되는 것은 곧 생명으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특별히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 기간에는 집집마다 상징적으로 횃불을 놓고 이 절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절기행사가 다 끝난 후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초막절을 잘 지켰고 그 뒤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셨습니다. 그 빛은 어둠에 비춰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둠은 무엇입니까? 혼돈, 공허, 흑암입니다. 아담은 죄로 인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 모든 인류는 어둠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혼돈, 공허, 흑암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어둠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셨습니다. 혼돈은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아 모호한 것을 의미합니다. 공허는 속이 텅 빈 모습입니다. 삶의 실속이 없고 헛된 모습, 채워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흑암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아 두려워하는 상태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세상은 동일하게 혼돈, 공허, 흑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 문맥은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 앉아 가르치고 계실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간음하는 여자를 데리고 온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주신 후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가르침을 이어가셨습니다. 그 가르침이 12절에 보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제자, 성도인데 이러한 자는 더 이상 혼돈, 어둠, 흑암 가운데 살지 않고 빛이신 주님으로 인해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426절에도 예수님을 이방의 빛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빛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데 이 예언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빛입니다. 이로 보건대 구원은 어두움 가운데서 빛으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흑암에 앉은 백성일 때 예수님을 믿음으로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된 목적은 죄로 인해 죽음 가운데 놓여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단순히 구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된 자 곧 구원 받은 성도는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게 된다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으로 인해 빛으로 인도함을 받아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는 복을 믿고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이겨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금년에도 어떤 문제로 불안하고,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신뢰함으로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이 참되다는 것과 내 말이 참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증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믿지 않을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말로 자신이 참되며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14절에 내 증언이 참되다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종교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빛과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자는 생명의 말씀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사역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에게 설명했지만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참입니다. 두 번째는 15절 말씀입니다.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지식과 판단을 가지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오히려 시험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나의 지식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판단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판단합니다. 외모, 경제적 능력, 학벌 등을 판단하며 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은혜로 붙들어주시며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세 번째는 18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증인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구를 잘 알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대로 두 증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이 두 증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를 알아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된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금년에도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역사하심을 누리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함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매일의 삶 속에서 답답한 상황을 만나고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으로 인도를 받고 약속의 땅으로 점차적으로 들어가며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