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말라기서를 살펴봅니다. ‘나의 사자라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는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의 두 번째 통치, 즉 주전 433-43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추정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말씀의 내용을 보면 1장에는 제사장들의 방종, 3장에는 십일조를 소홀하게 하는 모습들, 그리고 2장에는 이방인들과 혼인하고 자녀를 출산하는 내용들이 느헤미야 13장에 등장하는 내용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말라기서의 주요 내용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인들과 같은 모양으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죄의 심판과, 회복에 관한 말씀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예배를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불변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회복될 것과 정결하게 될 것이 말라기서를 통해 예언됩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은 당시 역사의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고,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회복되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내용들이 됩니다.

   오늘 말라기서의 내용에서는 바사가 바벨론을 정복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200여년의 기간 동안에 잡혀갔던 유다의 백성들이 3번에 걸쳐 귀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에 지도부릅니다자로 세워졌던 학개, 스가랴, 스룹바벨등의 주도 아래 성전이 재건됩니다. 이를 2성전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도 . 성전 재건에 힘을 모을 때는 마음에 기대가 있었습니다. 되찾을 영광과 축복에 대해서 큰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 부딪히자 점차 낙심하게 됩니다.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 긴 세월동안 계속되자 유대인들은 무기력함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에 이르렀습니다.

   같은 시대의 내용들이 기록돼있는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이 시대의 타락에 대해서 정리해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13장에 거룩한 성전과 순결한 성전 제사에 대한 경멸과 무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하는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서원 제물들도 형식적으로 드렸고, 온전히 드리지 않았습니다. 속이면서 드리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드리는 모습들이 생겼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상숭배를 거리낌 없이 행했습니다.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고 그들의 딸들을 데려와 함께 살아가는 잡혼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우상숭배가 자연스럽게 유대 백성들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됐으니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기대하던 중 낙심하자 영적으로 소홀해지고 죄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영이 병든 것을 보여줍니다. 2절의 말씀에 백성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며 항변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백성들에게 설명합니다. 에돔을 들어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에돔은 에서의 후손이 세운 나라인데,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나라라고 말라기 선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에서와 야곱의 미래를 정해놓으셨는데,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산들이 황폐하게 되고 산업이 광야의 이리 때 들에게 넘겨졌다는 것입니다. 4절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에서의 산업을 헐어버릴 것을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패망시킬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고 악하다고 저주하는 나라와 그 백성은 반드시 패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나라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소용없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했어도 이들은 사랑하셨기에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습니다. 이 힘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고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뛰어나거나 선하거나 의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는데도 패역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불평하고 배은망덕한 민족들이었습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민족들이었습니다.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많이 지었을 때는 몇 번이고 멸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하시고 오래 참으시며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하거나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그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아무 공로도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절 말씀에 사랑하셨다고 표현되있습니다. 한 없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오셨습니다. 잘못됐더라도 포로로 잡혀가는 일들이 있었더라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3, 호세아 111절에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연약한 백성들이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살 수 있는 방법도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의지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감사하는 자에게 내려집니다.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의 열매가 맺어지는 삶을 원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현재 나타나는 어려움들을 원망하면서 불행해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삼고 감사와 소망과 찬송만을 닮기를 원합니다. 다시 한 번 회복되고 일어서며 소망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성광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