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가운데서 찬송을

고린도후서1:3-11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과정을 ‘생로병사’라고 합니다. 이별, 질병, 슬픔 등으로 말미암는 아픔을 환난, 고난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핍박을 더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쓴 이 편지의 내용에는 너희가 지금 굉장히 고생을 많이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이교도들이 핍박하는 것, 내부적으로는 이단들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당파 싸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외국의 간섭으로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땅히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를 가지고 가야 하잖습니까? 심지어 원수라도 사랑해야 할텐데요. 이런 모습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아픔이 클수록, 하나님이 그만큼 특별한 것 주시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있었던 좋은 환경과 상황이 있었지만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위한 길, 고생길을 일부러 찾아 다녔어요. 오늘날 아이들 보세요. 아르바이트를 하나 해도 고생스러운 것은 안하려 하고, 돈 안 되도 쉬운 일만 하려고 합니다. 고난의 길은 성경이 권하는 길입니다. 바울은 살 소망 까지 끊어지는 고난을 당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다 갔다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면류관을 바라보게까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는가? 고난을 받을 때마다, 핍박을 당할 때 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의 손길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과 능력으로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란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 속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고난당한 사람이 고난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압니다. 똑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설득력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눈물을, 배신감을, 쓰라림을, 아픔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상처와 아픔을 만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분으로부터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고통을 체휼하신 분이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치유자가 되어주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가운데, 많은 성도들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고, 치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다른 아픔과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상처받은 치유자이신 예수님을 생각하시면서 힘을 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라합시다. ‘내가 상처받은 치유자다’

 세 번재로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욥’입니다. 가진 재물을 다 잃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여호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갑절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기도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평안한 길만 가게 하소서’ 가 아니라 ‘어떤 환난과 고통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감당할 수있는 힘을 주옵소서’가 되어야 합니다. 아픔을 겪을 수록 하나님의 능력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도 ‘이는 우리로 하나님을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환난의 때에 오히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1887년에 미국 시카고에 대형 불이 일어났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교회도 타들어갔습니다. 그 때에 교인들이 무디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성전이 타들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목사님은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돕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지으려고 하는데, 인부도 없이 다 허물어주시는 것 아닙니까?’ 그 때에, 사람들은 ‘새로 교회를 지을 돈이 어디있습니까?’라고 말했을 때에, 무디는 ‘나는 불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면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자리에는 지금도 유명한 ‘무디 기념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 신앙의 눈을 떠야 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럴 때에 여러분의 찬양의 내용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