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치셨던 것을 다 저버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되어서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고기잡는 일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것을 아시고, 심히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해 주셨죠. 이것은 순전히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 속에서 이루어진 일인 것을 다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과 함께 친히 조찬을 준비하시고 그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시게 됩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그 죄스러움과 미안함 때문에 실망감과 좌절감 속에서 사명의 길을 저버리고 옛 생활로 돌아가 있는 베드로를 위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겁니다. 사랑하던 제자가, 또 목적있게 불러내신 이 제자가 이런 상황 속에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두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이 제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특별히 사랑에 관한 부분을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다시 만나서 너도 사랑이 회복된 것처럼 네 사랑이 회복되어서 이 땅에 사랑이 결핍되어 예수의 사랑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하는 삶을 살라는 사명의 일을 주신 것입니다. 미국의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자이자 신학자인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도시 속의 죽음』에서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현대는 사랑이 결핍된 굶주림의 시대이다” 쉐퍼는 현대인들은 모두 네 가지에 굶주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굶주림, 대화의 굶주림, 접촉의 굶주림, 사랑의 굶주림입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또 우리가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도 이 세상이 참으로 사랑에 굶주렸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것 같고, 모두가 사랑을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 깊은 사랑, 그 생명을 만져줄 수 있는 사랑의 모습들을 만나지 못해서 모두가 다 굶주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예수님은 베드로와 같은 제자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증거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서 사랑과 은혜를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일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회복된 사람, 사랑과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세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누구보다도 더 많은 정도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원하시는데 단순한 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도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런 모습이 당신께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살다가도 헤어지면 사랑이 끝나게 됩니다. 부모와의 사랑도, 남녀간의 사랑도 헤어지면 끝이 납니다. 언제나 제한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질문하십니다. 앞의 질문과는 조금 다릅니다. 비교의 대상 없이 직접 물어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 쓰이는 사랑한다는 동사는 현재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에 네가 나를 사랑했었는데 지금도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 번이나 반복되는 질문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교훈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제 네가 사랑할 차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생명 구원의 사랑을 받았다면 이제 내 몸인 교회를 내게 받은 그 사랑으로 사랑하며 생명의 빚을 갚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부흥사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집, 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줄 믿으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 잘 섬겨나가는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모습 때문에 죄책하는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세 번씩이나 질문하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진지하게 대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위대한 사명 속에 바로 교회 사랑이 있고, 이웃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줘야 하는 것이고, 나눠야 하는 것이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헌신해야 하고, 섬기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부활주일을 보냈습니다. 부활 이후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할 것인가 그 세미한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오늘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회복시키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와 이웃을 사랑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껏까지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도 사랑을 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끝없이 사랑할 수 있어야 되겠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며 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하시는 축복을 모든 성도들이 받아누리고 기쁨의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