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15C에는 스페인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항구도시의 해안이 끝나는 지점에 바위가 하나 있고, 거기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여기가 끝이다. 이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네모라고 생각해서 그곳이 끝이고, 더 나가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492년 이 항구도시에 배 한 척이 들어왔고, 한 사람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는 끝이 아니다. 이 너머에 위대한 세계가 존재한다” 이 사람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콜럼버스의 확신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만약에 이런 확신이 없었다면 두려워서 항해를 어느 지점까지밖에 못했을 것이고, 그 이상에 있는 새로운 대륙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일은 위대한 확신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위대한 신념이나 확신은 사람들을 절망 가운데 소망을 갖게 해줍니다. 또 이 소망을 갖게 되면 자신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일으켜 세워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강점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소망이 되시고, 하나님의 약속 있는 말씀이 소망이 되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현실은 절망적일 것 같은데도 그런 가운데 기도하고 찬송하는 가운데 일어나게 됩니다. 슬픔을 만난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찬송을 합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다시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절망하고 낙심하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인생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왜 일어납니까? 현실밖에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현실 너머에도 뭔가가 있는데 그걸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죠. 믿음과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믿음이 바로 눈이 되어서 현실 너머의 것들을 바라보게 되고, 이 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확실한 소망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언제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확신, 성경의 약속에 대한 확신의 눈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후 64년 7월 어느 날, 로마 시내에 큰 불이 났습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자기가 한 방화임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이 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게 됩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바위굴 속으로 피신하여 살게 됩니다.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산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도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하여 산 소망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 소망’이 과연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모든 제자들이 절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믿음은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였던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은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모든 일들이 다 끝났고,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베드로와 그 제자들이 다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전과 다른 모습입니다. 이제는 자기들이 기적을 행하고, 예수를 힘있게 선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끝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제자들에게 이런 등장의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자들이 산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절망했고, 실패했다는 생각을 한 것 맞습니다. 더 이상 예수의 제자로 살지 않을 것 같던 모습이 있던 것 맞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변했습니다. 산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절)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 절망과 좌절 가운데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산 소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면서 그들 역시 일으키는 일들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 이것이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면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는 능력이 발생하고, 이 능력을 가지게 되면 어떤 현실에 있는 고난의 절망도 벗어날 수 있고, 거기에 빠져들지 않고 굳게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고, 이 소망을 절대 잃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에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얼마나 많은 핍박을 만났겠습니까? 개혁 말기 정도에 루터는 그만 지쳐버렸습니다. 자꾸 절망스러운 생각에 지배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기도하는 가운데 남편이 있는 자리에 소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남편 루터에게 이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다면 당신이 그렇게 좌절할 리가 없죠.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니 하나님 돌아가신 게 맞습니다” 이 말에 루터가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일어나 마지막까지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삶 속에 산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주님의 능력으로 일어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