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이 난 물건이나 작품을 말합니다. ‘진품’은 진귀한 물품, 진짜 물건을 말합니다. 명품, 진품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명품을 꽤나 좋아하고,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진짜를 모방한 이미테이션, 흔히 말하는 짝퉁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그 모양이 너무나 똑같아서 진짜를 파는 전문가들도 헛갈릴 정도로 발달되고, 짝퉁이 넘쳐나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명품만 걸쳤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느냐?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지.’ 여러분은 무엇을 입든지, 언제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명품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어디에 내놔도, 어떤 상황이 되어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인정될 수 있는 명품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세계의 뉴스거리가 된 도요타 자동차의 몰락에 관해서 이런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품질로 뜨고, 품질로 지다.’ 2년 전 미국의 자동차회사 GM을 누르고, 세계 제일의 자동차 메이커로 등극할 때만 해도 생산라인에서 조금의 문제만 발생돼도 전체의 생산라인을 올스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함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찾으면 반드시 수정을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서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어 낸다 해서 품질지상주의의 모습으로 그만큼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세계가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품질지상주의가 무너진 것이죠. 무엇 때문에 그 명성을 지키지 못했느냐? 최대의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한 가운데 더 많은 차익을 내려는 생각으로 신속한 생산공정을 이루고, 부품을 빨리 조달하려고 전세계에 부품공장을 확장시킨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동차의 품질에 이상징후가 발견된 것이 벌써 지적이 되었어도 무시해버렸습니다. 최고의 품질이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 것도 중요하지만 지켜나가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에 소홀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변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라면 아버지를 닮아서 우리도 역시 변함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이런 저런 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변함이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사는 가운데 여러 가지 외부적인, 내부적인 갈등과 위기, 시험거리들을 많이 만납니다. 질병의 문제 때문에 은혜의 생활을 접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내동댕이치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상황이 닥쳐도 변함없이 예수를 믿는 것,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의 자리를 지킬 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고 감당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품 신앙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말년이 왔을 때, 지난 날을 돌이키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7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마지막 때에 부끄럽지 않은 고백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또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8절) 확신하며 벅찬 감격으로 소망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짝퉁과 진품의 차이는 맞아보면 압니다. 맞아보면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진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총각들은 군대가보면 알고, 처녀들은 시집가보면 안다’는 것이죠. 상황이 달라져보면, 환경이 달라져보면 이 사람이 정말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 변함없는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명품신앙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바울은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워 이겼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두 가지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믿는 자로서 이겨내는 것과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생 만나고 살아가는 것을 한탄하지 마십시오. 말씀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다고 말합니다(욥 5:7). 그 고생을 만나는 가운데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줄 믿고,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소망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생을 피해가자’가 아니라 ‘고생을 만나자, 그러나 이기자’가 성경적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생활의 현장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힘만 믿고, 그것을 의지하며 살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나태해지면 사단의 밥, 세속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영적으로도 깨어있고, 항상 기도에 힘써, 말씀을 듣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영적전쟁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둘째,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크고, 넓은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협착한 좁은 길입니다. 세상의 길은 넓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방종의 길입니다. 반대로 예수믿고 사는 길은 많은 것을 제한합니다. 바울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어디 있는가를 찾다보니 험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성도가 되게 하셨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지키고 살고, 사명의 길을 가겠다는 것은 우리의 결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바울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은 우리의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신 큰 복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믿음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바울처럼 우리도 언젠가 죽게 될텐데 여러분에게 이제는 남은 평생에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며 살겠다, 달려갈 길을 하나님 주신대로 달려갈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사명자의 길을 달려가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만날 수 있는 하늘의 면류관, 의의 상급을 모두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명품으로 사는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