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성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죄’라고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주님과 우리를 분리시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 가운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죄’가 우리 가운데 들어오게 되면 우리가 예수 안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리게 됩니다. ‘죄’된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믿음과 은혜의 자리에 다시 들어가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다시 언약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우리 신앙의 부흥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은 언약의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버리고 범죄 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출애굽기 32장, 33장, 34장에 이어서 사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시고 구원 해 낸 백성들이기에 일평생 하나님만을 섬기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들이 광야에서 금을 가지고 우상인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게 되면 반드시 진노하시고 징벌하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출애굽기 33장에는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는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34장에 가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언약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한 내용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남겨진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머물라 하신 곳에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뵈러 올라 간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악한 생각과 불신으로 채워져 그것을 표출한 된 내용이 두 가지입니다. 출애굽기 32장 1절에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라고 합니다. 여기에 모였다는 표현은 우리를 위해서 다른 신의 존재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두고 다른 신을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체할 신은 이 땅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출애굽기 32장 1절에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지도자인 모세를 향하여 비난과 경멸, 무시하는 태도였습니다. 모세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인 모세를 무시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한 내용들을 여호와 하나님이 다 아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는데, 그 첫째가 모세를 제외한 모든 나라 백성들을 파멸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이르게 되지만 내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영원토록 홀로 살아가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목숨을 걸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너희가 나를 간절히 찾게 되면 나를 만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 모세에게 응답 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돌판을 만들 것을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돌판은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통해 언약을 회복시키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름 가운데 강림하셔서 “여호와라 여호와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적인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대로 공급하고 계심은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라는 단어 속에는 ‘자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어머니가 아기를 향해서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자식처럼 사랑하신다는 뜻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오늘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을 사모하는 자로 살아갈 때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참된 신자가 되시고 성도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