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생명을 구원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보복의 원리가 아니라 바로 사랑과 용서의 원리가 생명을 살리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절대로 생명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록 악을 만났고, 대적을 만났다고 해서 똑같이 감정적으로 처리하고, 똑같이 그들에게 해를 가하게 된다면 누가 그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심령은 온전하게 되겠습니까? 그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아마도 사탄에 의해서 마음이 찢겨지고, 악한 것들이 드러나게 되면서 내 마음은 지옥과 같이 변해졌을 것입니다. 생명이 자라지 않는 사막처럼, 생명의 말씀이 들어갈 수 없는 완전한 황무지와 같은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자기의 심령이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불쌍한 영혼들이 살 수 있는 기회들이 박탈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39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해를 만나는 일이 오죽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구약에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동해보복법을 말씀하시고, 신약에서는 모든 것을 내주면서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구약의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를 용서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그 사람이 회개할 기회, 복음을 들을 기회,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죄는 용서해주고, 그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주님의 이 고귀한 뜻 앞에 우리의 감정을 내세워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희생시키고, 사랑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변하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변화가 되어져야 합니다. 사랑의 법을 따르는 사람으로 바뀔 때,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갚고, 사랑으로 갚아줄 때, 나를 희생시켜서 당신을 위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게 될 때, 구원의 길들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영혼 구원의 일들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야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모든 성도들이 지녀야 될 사랑의 원리에 대해서 두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악한 자를 대적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악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선한 것입니다. 선(善)은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하나님의 말씀이 품어질 때 만들어지게 됩니다. 예수로 심령이 채워지고,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시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둘째, 영혼을 살리기 위해 희생의 마음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서 생명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45절)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을 품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일들도 각오하고, 나를 드리게 될 때, 사랑을 실천할 때, 후한 마음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더 챙겨주는 마음이 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선하게 대해주지 않아도, 악으로 대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그 분 앞에 뭘 드렸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일방적인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더라도 사랑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람의 마음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은 한 공산당원 청년에 의해서 죽게 됩니다. 두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될 때, 이 아버지는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열 가지 감사의 제목이었습니다. “첫째는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녀가 나오게 된 것 감사합니다. 둘째는 이런 보배스러운 자녀를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내게 맡겨 주셨는지 감사합니다. 셋째는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는 한 아들의 순교도 감사한데 두 아들의 순교라니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죽는 것도 큰 복인데 전도하다 순교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여덟째,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에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있는 마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열째,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놀라운 감사의 고백이 손양원 목사님의 인격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에서부터 비롯되어서 이런 고백이 나타난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 속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용서하고, 나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채워지셔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생명 구원의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게 될 때, 옳고 그름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 사랑의 원리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