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는 옥중서신입니다. 주후 61~62년쯤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했습니다. 이 서신은 예수 안에서 성도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복과 교회에 대해 확신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서신을 받아 믿는 자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1-3장은 교회론을 중심으로 교회의 기원과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 교리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4-6장은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화목과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하여 다른 사람과의 화평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로 들어오고 다른 지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으로 지음 받은 자이기에 새 사람답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신령한 복은 새 사람으로 지음 받은 성도에게 부어집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오늘 본문은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모습을 대조합니다. 첫째로, 옛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만 새 사람은 참된 말을 합니다. 둘째로, 옛 사람은 분을 내며 죄를 짓지만 새 사람은 마귀에게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셋째로, 옛 사람은 도둑질을 하지만 새 사람은 구제를 합니다. 옛 사람은 사단의 지배를 받아 그의 영향력 안에서 죄를 짓고 거짓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새 사람이 된 존재는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참되며 죄를 짓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결국 새 사람은 말과 감정과 행위 모두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존재입니다. 7:21에 기록된 대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새 사람입니다. 이를 오늘 본문에서는 30절을 보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미 성령님의 인 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것이요 천국백성임이 확증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옛 본성을 버리고 새 본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25절의 그런즉은 결과를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은 자로서 이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원래 죄인이었던 자들, 즉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건지셔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거짓은 사단의 성품입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즉 사단의 종노릇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말쟁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진실을 과장하고 없는 말을 만들어내고 각종 부정의 행위들을 합니다. 진리가 분명함에도 진리를 왜곡시키고 변질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17:17 말씀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합니다. 말씀 충만하여서 말씀의 인도를 받아 말과 감정과 행위가 바르게 열매 맺어야 합니다. 29절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서로 지체가 된 우리는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통해 다른 자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둘째는 감정으로도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26~27절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된 자는 분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을 낸다고 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또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사랑입니다. 즉 자기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갈 때는 진노하십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더러워졌을 때 분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그 분을 닮아가는 자들은 불의와 불경건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분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죄를 짓지 않습니다. 사람이 화를 내다보면 감정이 격해지고 말을 함부로 하게 되고 판단이 흐려지고 쉽게 정죄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면 안 됩니다. 오히려 화평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감정까지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틈을 주면 안 됩니다. 성도도 감정이 격해지면 사람이 미워질 수 있고, 말과 행위에 있어 과격해질 수 있습니다. 분명 다른 사람이 잘못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잘못 반응하면 이제 자기 자신도 죄인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신중해야 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성도는 해가 지도록 분노를 품어서도 안 되고 마귀에게 틈을 줘도 안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셋째는, 행위로도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28절을 보면 도둑질로 이야기합니다. 도둑질은 남의 수고를 땀을 흘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쉽게 빼앗는 것입니다. 축복은 수고한대로 얻는 것인 반면 도둑질은 작은 노력을 통해 남의 것을 쉽게 얻겠다는 마음입니다. 불성실한 마음에서 생기는 악한 행위가 도둑질입니다. 사기와 속임수도 도둑질에 해당됩니다. 값을 치르지도 않고 남의 것을 도용하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도둑질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고 자신의 땀을 흘리는 수고로 얻은 것을 나눕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합니다. 갚을 것이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함을 얻어 새 사람이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경건과 선한 것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말을 하며 구제하고, 분을 내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새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거룩한 공동체로 자라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